이병훈 영상자료원장 "나운규 '아리랑' 원본 잃는 일 다신 없어야"
“영상자료원이 37년 사상 최대 숙원사업인 제2보존센터를 짓게 됐습니다. 부족한 보존공간을 확보하면서 자체 건물을 갖게 된 겁니다. 영화계로서도 경사지요.”

이병훈 한국영상자료원장(66·사진)은 17일 “2009년 하반기 취임한 뒤부터 제2보존센터 건립에 도전해 3수 만인 지난해 말에야 예산을 확보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기획재정부로부터 총 사업비 330억원 중 부지 매입과 설계비로 32억원을 배정받았다. 파주출판단지 내 문화시설용지에 약 5000㎡의 부지를 사들여 연건평 8600㎡ 규모의 건물을 짓기로 했다. 올 상반기 중 기본설계 공모절차에 들어가 내년에 착공, 2014년 말께 준공할 예정이다. 제2보존센터에는 영화필름, 비디오, 디지털영상물 등 영상 관련 각종 자료를 위한 보존고와 보존처리 및 복원작업 공간, 기술 시사 및 주민들을 위한 열람 공간을 배치하게 된다.

“서울 상암동 본원 보존고와 성남시에 있는 임시 임대공간인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보존고를 운영 중이지만 3년 전부터 자료가 급증해 2013년이면 포화상태에 도달합니다. 국가기록원 측에서도 자체 공간이 부족하니까 영상자료를 옮기라고 통고해왔습니다.”

영상자료원이 보관 중인 1936년작 ‘미몽’을 비롯한 상당수 영화들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고, 한류 열풍에 따라 해외로부터 고전한국영화의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 이전의 영상자료들은 대부분 분실한 상태다. 일제시대 나운규의 ‘아리랑’이나 이만희 감독의 1960년대 걸작 ‘만추’ 원본 필름조차 없다. ‘만추’는 해외영화제에 출품했다가 반환받던 중 국내 세관에 통관료를 제때 납부하지 못하자 소각 처리됐다고 한다. 김기영 감독의 데뷔작 ‘죽엄의 상자’는 미국 국가기록관에서 발견해 회수하기도 했다. 영상자료원은 1974년 건립됐고, 1996년에야 의무 납본 제도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영화는 당대 문화의 총체입니다. 언어와 사상, 사회생활상을 모두 담고 있지요. 언어학, 고고학, 사회학 분야에서 영화를 연구자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자료의 중요성을 최근에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상자료원은 디지털 시대에도 원본파일을 필름으로 보관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디지털자료들은 별도로 보관하지만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우리도 미국과 프랑스, 영국처럼 이원보존체제를 갖춰야 합니다. 조선시대에도 오대산, 강화도 등 4곳에 나눠 주요 기록물을 보관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1980년대 일본 도쿄에 있는 영상자료원은 화재로 수많은 자료를 잃어버렸지만, 2008년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화재로 소실된 5만점을 복제본을 분리보관한 덕분에 모두 복구했다”며 “우리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온 이 원장은 조선일보 사진부 부장, 편집부국장을 거쳐 2009년부터 영상자료원장직을 맡고 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