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래미.’ 지난 12일에 있었던 지구촌 음악 축제 그래미상 제54회 시상식에서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레이디 가가를 무관(無冠)에 그치게 하면서 주요 6개 부문을 석권한 신인급 여가수 ‘아델(Adele)’과 ‘그래미’를 합쳐서 만들어진 말이다.

물론 이런 ‘반전의 드라마’는 아델의 ‘음악적 완성도’가 일등 공신이다. 경쟁자였던 레이디 가가도 수상을 축하한 실력파라니까. 그런데도 굳이 ‘반전’이라는 말을 쓰게 되는 불편함의 원인은 요즘 유행어인 ‘생물학적 완성도’ 측면에서 아 델이 레이디 가가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외모 자체로도 이슈가 되는 레이디 가가에 비해 아델은 뚱뚱하고 24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대 노안’이다.

얼마 전 시즌1을 마친 ‘나는 가수다’에서 1위를 차지한 이영현의 경우가 아델에 오버랩되기도 한다. 그룹 ‘빅마마’ 출신인 그녀는 풍부한 성량과 표현력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뚱뚱한’ 존재감은 2위를 차지한 동갑내기 친구 거미의 ‘날렵한’ 퍼포먼스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이미 이 프로는 ‘얼굴 없는 가수’였던 김범수를 ‘비주얼 가수’로 등극시킨 전례가 있다. 그런 반전의 힘은 오로지 ‘음악적 완성도’에서 나온다. 음악은 눈이 아니라 귀가 호강해야 진짜다.

자꾸 이런 사례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강박관념일지 모르지만, 한 가지만 더 예를 들어보자. 요즘 인기 있는 TV 프로 ‘개그콘서트’에 ‘네가지’라는 코너가 있다.

여성들에게 없는 남자들의 네 가지 조건을 소개하는 내용인데, 단연 압권은 ‘뚱뚱한 남자’이다. 개그맨 김준현은 왜 자기가 나오는 꿈을 꾸면 복권을 사느냐며 “누굴 진짜 돼지로 아나?”라고 분노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만은 ‘홀쭉하다’고 강변한다.

이런 개그보다 현실이 더 개그 같다. 올 2월 초 치러진 서울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새내기 대학’에서 ‘스펙 쌓기’라는 연극을 했더니 어학연수, 인턴, 자격증, 해외봉사 등등의 온갖 실력을 갖춰도 가장 중요한 스펙은 바로 ‘외모’임을 풍자한 내용이 담겼었단다. 뚱뚱하고 못생긴 학생은 서울대생조차도 성형수술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닌 건 당연한데, 취직이 성적순이 아닌 건 좀 이상하다.

지금 뒤늦게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런 현상들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 사회 전반의 ‘아마추어리즘’이나 ‘본말전도 현상’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보기 좋다’는 것이 ‘먹기 좋다’라는 결과의 시너지효과를 가져온다는 뜻이지, ‘빛 좋은 개살구’를 원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도 ‘같은 값’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되면 더 예쁜 치마를 고른다는 뜻이어서, 치마 값이 다르면 선택도 달라질 수 있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은 ‘정치적 완성도’여야 할 것이다. 팔자 좋은 소리로 매도될지 모르겠지만, ‘될 사람’이 아니라 ‘잘할 사람’을 공천해야 한다. 어느 당이건 보기만 좋거나 값이 떨어지는 사람을 당선에 유리하니까 공천하려는 ‘꼼수’에 분주한 듯해서 걱정이다. 완성도가 승률(勝率)은 아니기 때문이다.

[씨줄과 날줄] '나가수' 1등 이영현에 박수를
유리한가 불리한가를 기준으로 선거를 치른다면 어느 당이 승리하더라도 총선 ‘이후’가 더 문제다. 정치는 총선 이후에도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현실 정치에서 완성은 불가능하다. 유토피아란 이 세상에 없는 곳이니까. 그럼에도 완성도는 스스로 미완성임을 인정할 때 높아진다. 정치인들이 더욱 노력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실력 있는 가수도 하고 개그맨도 하는 걸 이제는 정치인도 해야 한다.

김미현 < 이화여대 교수·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