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함께] 성진, 車엔진 4개 담아도 끄떡없는 '골판지 박스'…年120억원 매출
성진(대표 류종욱)은 ‘과거’를 묻지 않는 회사다. 이 회사는 사람을 채용할 때 학벌 출신 경력에 대해 전혀 묻지 않는다. 입사 때 일단 이력서를 받긴 하지만 채용되면 류종욱 대표가 그 이력서를 아무도 모르게 찢어서 불태워 버린다.

따라서 성진의 인사카드에는 학력란이 없다. 류 대표는 인사카드에 학력란을 없앤 이유에 대해 “우리 회사는 골판지상자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가 중요하지, 중졸 고졸 대졸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학력을 묻지 않는 성진은 과연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이 회사는 경북 성주 보암산업단지에 대지 7590㎡, 연면적 2640㎡의 공장에서 삼중골판지를 생산해낸다.

삼중골판지란 수출품을 넣는 포장재다. 이 회사가 만드는 골판지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강도를 가졌다. 1㎥의 삼중골판지 박스는 무려 3.75의 무게를 거뜬히 견뎌내는 성능을 지녔다.

이처럼 뛰어난 강도와 충격 흡수력 때문에 성진의 골판지박스는 자동차부품 업체들로부터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이 포장재는 자동차엔진 등 무거운 부품을 포장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성진이 생산하는 고강도 박스는 현대H&S를 통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차부품을 수출하는 데 연간 120억원어치 이상 공급된다. 이 밖에도 삼보모터스 평화산업 세진 평화기공 인알파코리아 산호수출포장 만앤휴멜동우 등 자동차부품 관련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가 납품한 삼중골판지 박스로 포장한 자동차부품은 안전하게 미국 슬로바키아 러시아 체코 등 세계 시장으로 배송되고 있다.

현재 이 고강도 박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자동차엔진 4개를 한꺼번에 넣을 수 있는 상자다. 가로 150㎝, 세로 1m 크기의 이 박스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데 숨은 역할을 해왔다.

성진의 이런 성과를 보면 분명히 ‘과거’를 묻지 않는 인사관리 기법이 성공을 거뒀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회사는 한발 더 나아가 중소기업으로는 보기 드물게 연공서열 제도를 없애 버렸다. 이 회사의 유일한 인사평가 기준은 ‘성실’이라고 류 대표는 밝혔다.

일반적으로 연공서열을 없애고 능력급 연봉제를 실시하면 사내 분위기가 삭막해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능력급 연봉제는 사원 간 경쟁의식을 고취시켜 서로를 질시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목표 달성을 최고의 능력으로 삼는 게 아니라 출퇴근 시간 잘 지키기, 인사 잘하기 등 인간적 성실함에 더 많은 점수를 준다.

류 대표는 성진의 경영이념은 첫째도 성실, 둘째도 성실, 셋째도 성실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중소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려면 사내에 인간적인 분위기를 만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단지 연구·개발(R&D) 비용만 더 많이 투자한다고 해서 첨단 기술기업으로 부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회사도 연간 8억원 정도를 R&D에 투자한다. 하지만 “비인간적인 경쟁을 강요하면서 R&D 투자에만 열을 올린 회사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는 게 류 대표의 지적이다.

아무리 기술이 앞선다 해도 공장에서 일하는 사원들이 성실하게 품질 수준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류 대표는 “성실함을 보이는 사원에 대해서는 무궁무진한 배려를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은 사원들에게 충분하게 베풀 만큼 돈을 벌지 못했지만 앞으로 더욱 더 베푸는 경영을 하고 싶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언론계에서 8년간 사회부 기자를 하던 그가 중소 제조업체를 창업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기업인들이 너무 자기 이익만 챙기고 지역사회에 베풀지 않는 것에 반발을 느낀 것이 발단이 됐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사원들의 최대 걱정은 ‘가계빚’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이 회사는 퇴직금은 넉넉히 주지 못하더라도 회사를 다니면서 빚에 허덕이는 것은 막아주기로 하고, 사원들에게 5년에서 8년까지 장기로 돈을 빌려주고 있다.

사실 이 회사의 인사관리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신용불량자도 채용한다는 점이다. 이미 신용불량자로 들어온 직원 가운데 월급을 모아 신용을 회복한 사원도 있다.

그가 경영이념을 ‘베푸는 기업’으로 설정한 데는 또 다른 사연이 있다. 1991년의 일이다. 골판지를 납품하고 받음 어음 7억원이 덜컥 부도가 나고 만 것이다.

이 돈을 막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북 칠곡 기산에 있던 대지 4620㎡, 연면적 1980㎡ 규모의 공장에 화재가 나 공장 전체가 불타 버리고 말았다.

류 대표는 이때 그동안 신용을 쌓아온 거래 기업과 금융회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다시 일어설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처럼 베푸는 것을 경영이념으로 추진해온 덕분에 성진은 신용보증기금이 선정하는 우수신용기업에 뽑혔으며, 대구은행은 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했다. 중소기업청도 ‘경영혁신형 중소기업’으로 지정했다. 류 대표는 요즘도 “그 사람의 과거를 묻지 말고, 그 사람의 성실을 물어라”고 못박는다.

이치구 한국경제 중소기업연구소장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