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운영을 둘러싼 비리가 끊이지 않지만 이에 대한 감시는 사실상 주민 자율에 맡겨져 있다. 국토해양부나 지방자치단체도 섣불리 간섭했다간 지나친 규제로 오해를 살까 우려해 주민 간 다툼에 선뜻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관리사무소장(위탁 관리 업체에서 파견직)이나 입주자 대표회의 대표가 비리를 저질러도 주민들의 무관심 속에 그대로 묻히거나 적발하기 힘든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의 한 아파트가 아파트 운영에 얽힌 각종 비리를 예방하기 위해 입주민들이 직접 나서 주거 관리 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비리 차단 장치를 마련하고, 의사 결정 때 입주민의 참여 기회도 넓혀 주목받고 있다.

1550여가구로 구성된 경기 의정부시 민락동 송산 주공아파트 1단지는 2008년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동 대표 8명 중 5명이 2년 동안 1000만여원의 관리비를 횡령한 혐의로 주민들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이후 두 달 만에 새로운 동 대표단이 구성됐고, 주민 사이에 과거 일을 털어버리고 새출발하자는 분위기가 일어났다.

새로 선출된 대표단은 입주자 대표회의 방식부터 뜯어고쳤다. 매달 열리는 회의의 전 과정을 CC(폐쇄회로)TV로 생중계했다. 회의 결과는 인터넷 카페에 올렸다. 그동안 폐쇄적으로 운영돼 온 입주자 대표회의의 의사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해 주민들의 불신을 없애고, 각종 비리와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을 맡았던 강성재 씨(48)는 “아파트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관리비가 줄줄 새 나가는 가장 큰 원인은 주민들의 무관심과 대표단의 일방적인 업무 처리 탓”이라며 “이 때문에 대표단의 최우선 과제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도색, 청소 등 아파트 단지 내 공사 및 용역 업체 선정은 선정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졌던 공사비와 용역비 부풀리기 등을 막기 위해 모두 공개 입찰 방식으로 바꿨다. 1년에 한 차례 외부 회계법인을 따로 선정해 자체 감사도 받는다.

하자보수 공사 예산 내역과 업체 선정 과정은 공사 전 전체 주민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된다. 부실 공사와 공사비 과다 지출을 방지하기 위해 노무비와 재무비, 일반관리비, 이윤 등을 명시한 ‘표준 입찰 내역서’를 확인하는 것도 주민들의 몫이다. 강씨는 “주민들이 내는 관리비가 새 대표단이 선출된 뒤 30% 가까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2009년 지어진 아파트 단지 내 도서관은 외부 관리인을 두지 않고 학부모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직접 관리한다. 강씨는 “지난 4년간 새 시스템에서 배운 가장 큰 소득은 아파트 단지의 관리와 운영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각종 비리를 뿌리 뽑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집값도 덩달아 오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라며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의식을 갖고 아파트 관리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