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바친 금형…"도요타·BMW·GM도 우리 제품 써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 상익엔지니어링 윤진한 대표
19세부터 금형…불혹에 창업
초창기 영세한 공장 모습…바이어 외면 '뼈아픈 경험'
호텔급 공장 짓고 수주 몰려
철저한 직원교육, 숙련도 높여…지난달 GM의 품질 인증 획득
연매출 40억…3년내 100억 예상
19세부터 금형…불혹에 창업
초창기 영세한 공장 모습…바이어 외면 '뼈아픈 경험'
호텔급 공장 짓고 수주 몰려
철저한 직원교육, 숙련도 높여…지난달 GM의 품질 인증 획득
연매출 40억…3년내 100억 예상
자동차 전자제품 통신기기 카메라 등의 모양을 결정하는 것은 금형이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살 때 성능 못지않게 디자인을 중시한다. 그럴수록 제품 외관을 결정하는 금형의 중요성도 커진다. 부천 오정동에 있는 상익엔지니어링(대표 윤진한·54). 이 회사에는 일본 미국 브라질 호주 등 외국 바이어들이 줄기차게 드나든다. 특히 도요타 BMW 아우디 GM 등의 대형 협력업체들이 이 회사를 찾아온다. 왜 종업원 28명의 이 작은 중소기업을 방문하는 것일까.
외환위기가 엄습한 직후인 1998년 2월. 햇빛이 한뼘도 안 드는 부천 도당동 지하실 좁은 공간에 회사 간판이 걸렸다. 직원 3명의 상익엔지니어링. 열아홉 살 때인 1977년부터 영등포 문래동 일대의 금형공장에서 일해온 윤진한 대표가 불혹의 나이에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20년 이상 잔뼈가 굵은 금형 분야에서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국내 최고의 금형업체를 일구는 게 그의 꿈이었다. 하지만 이런 포부도 잠시였다. 일감 수주가 잘 안 되고 금방 어려움이 닥쳤다. 불과 몇 달 만에 간판을 내릴지 고민하는 처지에 놓였다.
윤 대표의 기술력과 성실성을 눈여겨본 일부 바이어들은 일부러 일감을 주려고 이 공장을 찾았다가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해 빙빙 돌다가 돌아가곤 했다. 열심히 뛰어도 수주가 시원치 않을 판에 찾아온 바이어마저 놓친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년 뒤 지상으로 나왔다. 가장 먼저 주차장이 있는 공장을 구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브라질 바이어가 와서 함께 식사하는데 물을 한잔도 마시지 않는 것이었다. 커피나 차도 들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번에는 화장실이 문제였다. 당시 재래식 이동화장실이었는데 브라질 바이어가 이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예 화장실을 가기 싫어서 식음을 끊다니. 일본, 미국 바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윤 대표가 그 뒤 몇몇 공장을 거쳐 2010년 2월 부천 오정동에 호텔급 공장을 지은 것도 이런 뼈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오정산업단지 혹은 ‘몰드밸리’로 불리는 이곳에는 금형업체들이 모여 있다.
그중 하나인 상익엔지니어링은 공장이 깨끗할 뿐 아니라 사무실 회의실 편의시설 등이 잘 정돈돼 있다. 외국 바이어들이 둘러본 뒤 자국 내에서도 이런 공장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공장 안에는 밀링 CNC머신 머시닝센터 등 각종 기계가 정렬돼 있다. 이곳에서 만드는 금형은 도요타 BMW 아우디 GM 등에 납품된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다. 직접 수주하는 게 아니라 1차벤더나 2차벤더들로부터 받는다. 하지만 1·2차 벤더들도 일본 미국 유럽 등의 유명 부품업체들이다. 국내 웬만한 대기업보다 매출이 훨씬 많은 거대기업들이다. 제품전시실에는 이 회사의 금형으로 찍어낸 부품들이 전시돼 있다. 자동차 글로브박스, 라디에이터 그릴,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오토바이 부품, 가전제품 부품, 통신기기 부품 등이다.
이 회사는 생산제품의 80%를 수출한다. 내수 비중은 20%에 불과하다. 제품으로는 자동차 플라스틱 사출금형이 약 70%를 차지하고 오토바이 전자 통신 등 나머지가 30%를 점한다.
상익엔지니어링이 세계적인 업체의 금형을 만들 수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35년 금형 외길을 통해 쌓은 노하우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윤 대표는 군입대 전부터 금형공장에서 일했다.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어릴 적 서울 당산동으로 이사온 그는 자연스레 이웃 문래동에 몰려 있던 금형업체에 취직했다. 남들이 대학을 다닐 때 장갑과 작업복에 기름때를 묻혀가며 땀흘려 일했다. 그는 이때부터 금형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금형을 만드는 공정은 복잡하다. 설계, 소재 확보, 밀링 가공, 연마, 머시닝센터 가공, 조립, 테스트 등 10여개 공정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을 모두 해봤기 때문에 소리만 들어도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안다. 또 하나는 정밀기술이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금형은 주로 플라스틱 사출금형이다. 플라스틱을 찍어내기 위해 쓰는 금형이다.
윤 대표는 “이 금형의 정밀도는 100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정교한 금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설비도 좋아야 하지만 직원들이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 이 회사는 철저한 직무교육 등을 통해 이들의 숙련도를 높인다. 아울러 생산기술연구원의 파트너 기업으로 선정돼 이 기관과 협력하면서 기술 발전을 꾀했다. ISO 9001에 이어 외국 굴지 기업들의 협력업체로 지정받았다. 올 1월에는 GM으로부터 GPPC(Global Paint & Polymer Center)인증도 받았다. 이 센터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에 맞는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요소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금형에 대한 애착이다. 윤 대표는 금형을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금형에 청춘을 바쳤을 뿐 아니라 금형을 통해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일궈왔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금형은 주요 산업의 뿌리”라며 “금형이 없으면 자동차 오토바이 가전제품 통신기기 등 주요 산업이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특히 이들 산업의 경쟁력은 앞으로 금형에서 판가름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동차 전자 통신산업의 경우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바로 디자인인데 디자인을 좌우하는 게 바로 금형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정동의 현대식 공장(대지 1000㎡ 건평 3000㎡)이 완공됨에 따라 국내외로부터 수주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간 40억원 수준인 매출이 3년 내 100억원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윤 대표의 꿈은 금형업계의 모델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국내에 군소업체를 포함해 수천개의 금형업체가 있는데 우리 회사는 규모 면에서 상위 업체에 든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종업원 10인 이하의 영세업체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금형산업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젊은이들이 이 분야에 적극 도전해볼 것”을 주문했다. 윤 대표는 “금형기술 하나만 제대로 익혀도 정년 걱정없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내 금형산업의 동반 발전 방안 마련이다. 그는 “중국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맹렬히 추격하고 있으나 기술력이 뛰어나면 이들을 압도할 수 있다”며 “한국의 금형산업은 설계와 가공기술, 그리고 이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력 양성이라는 3대축을 통해 앞서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최근 정부가 뿌리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을 마련한 것은 매우 다행”이라며 “다만 이들 정책이 내실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중장기 로드맵을 빨리 만들고 이에 걸맞은 지원책을 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20대 청년시절 친구들이 대학에서 미팅과 축제를 즐길 때 컴컴한 공장에서 쇠를 깎았던 윤 대표는 그 친구들이 은퇴 이후를 걱정하는 요즘 금형산업 발전 방안과 국내 최고의 금형업체를 만드는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외환위기가 엄습한 직후인 1998년 2월. 햇빛이 한뼘도 안 드는 부천 도당동 지하실 좁은 공간에 회사 간판이 걸렸다. 직원 3명의 상익엔지니어링. 열아홉 살 때인 1977년부터 영등포 문래동 일대의 금형공장에서 일해온 윤진한 대표가 불혹의 나이에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20년 이상 잔뼈가 굵은 금형 분야에서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국내 최고의 금형업체를 일구는 게 그의 꿈이었다. 하지만 이런 포부도 잠시였다. 일감 수주가 잘 안 되고 금방 어려움이 닥쳤다. 불과 몇 달 만에 간판을 내릴지 고민하는 처지에 놓였다.
윤 대표의 기술력과 성실성을 눈여겨본 일부 바이어들은 일부러 일감을 주려고 이 공장을 찾았다가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해 빙빙 돌다가 돌아가곤 했다. 열심히 뛰어도 수주가 시원치 않을 판에 찾아온 바이어마저 놓친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년 뒤 지상으로 나왔다. 가장 먼저 주차장이 있는 공장을 구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브라질 바이어가 와서 함께 식사하는데 물을 한잔도 마시지 않는 것이었다. 커피나 차도 들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번에는 화장실이 문제였다. 당시 재래식 이동화장실이었는데 브라질 바이어가 이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예 화장실을 가기 싫어서 식음을 끊다니. 일본, 미국 바이어들도 마찬가지였다.
윤 대표가 그 뒤 몇몇 공장을 거쳐 2010년 2월 부천 오정동에 호텔급 공장을 지은 것도 이런 뼈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오정산업단지 혹은 ‘몰드밸리’로 불리는 이곳에는 금형업체들이 모여 있다.
그중 하나인 상익엔지니어링은 공장이 깨끗할 뿐 아니라 사무실 회의실 편의시설 등이 잘 정돈돼 있다. 외국 바이어들이 둘러본 뒤 자국 내에서도 이런 공장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공장 안에는 밀링 CNC머신 머시닝센터 등 각종 기계가 정렬돼 있다. 이곳에서 만드는 금형은 도요타 BMW 아우디 GM 등에 납품된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다. 직접 수주하는 게 아니라 1차벤더나 2차벤더들로부터 받는다. 하지만 1·2차 벤더들도 일본 미국 유럽 등의 유명 부품업체들이다. 국내 웬만한 대기업보다 매출이 훨씬 많은 거대기업들이다. 제품전시실에는 이 회사의 금형으로 찍어낸 부품들이 전시돼 있다. 자동차 글로브박스, 라디에이터 그릴,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오토바이 부품, 가전제품 부품, 통신기기 부품 등이다.
이 회사는 생산제품의 80%를 수출한다. 내수 비중은 20%에 불과하다. 제품으로는 자동차 플라스틱 사출금형이 약 70%를 차지하고 오토바이 전자 통신 등 나머지가 30%를 점한다.
상익엔지니어링이 세계적인 업체의 금형을 만들 수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35년 금형 외길을 통해 쌓은 노하우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윤 대표는 군입대 전부터 금형공장에서 일했다.
충북 청원에서 태어나 어릴 적 서울 당산동으로 이사온 그는 자연스레 이웃 문래동에 몰려 있던 금형업체에 취직했다. 남들이 대학을 다닐 때 장갑과 작업복에 기름때를 묻혀가며 땀흘려 일했다. 그는 이때부터 금형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금형을 만드는 공정은 복잡하다. 설계, 소재 확보, 밀링 가공, 연마, 머시닝센터 가공, 조립, 테스트 등 10여개 공정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을 모두 해봤기 때문에 소리만 들어도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안다. 또 하나는 정밀기술이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금형은 주로 플라스틱 사출금형이다. 플라스틱을 찍어내기 위해 쓰는 금형이다.
윤 대표는 “이 금형의 정밀도는 100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정교한 금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설비도 좋아야 하지만 직원들이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 이 회사는 철저한 직무교육 등을 통해 이들의 숙련도를 높인다. 아울러 생산기술연구원의 파트너 기업으로 선정돼 이 기관과 협력하면서 기술 발전을 꾀했다. ISO 9001에 이어 외국 굴지 기업들의 협력업체로 지정받았다. 올 1월에는 GM으로부터 GPPC(Global Paint & Polymer Center)인증도 받았다. 이 센터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에 맞는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요소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금형에 대한 애착이다. 윤 대표는 금형을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금형에 청춘을 바쳤을 뿐 아니라 금형을 통해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일궈왔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금형은 주요 산업의 뿌리”라며 “금형이 없으면 자동차 오토바이 가전제품 통신기기 등 주요 산업이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특히 이들 산업의 경쟁력은 앞으로 금형에서 판가름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동차 전자 통신산업의 경우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바로 디자인인데 디자인을 좌우하는 게 바로 금형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정동의 현대식 공장(대지 1000㎡ 건평 3000㎡)이 완공됨에 따라 국내외로부터 수주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간 40억원 수준인 매출이 3년 내 100억원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윤 대표의 꿈은 금형업계의 모델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국내에 군소업체를 포함해 수천개의 금형업체가 있는데 우리 회사는 규모 면에서 상위 업체에 든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종업원 10인 이하의 영세업체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금형산업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젊은이들이 이 분야에 적극 도전해볼 것”을 주문했다. 윤 대표는 “금형기술 하나만 제대로 익혀도 정년 걱정없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내 금형산업의 동반 발전 방안 마련이다. 그는 “중국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맹렬히 추격하고 있으나 기술력이 뛰어나면 이들을 압도할 수 있다”며 “한국의 금형산업은 설계와 가공기술, 그리고 이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력 양성이라는 3대축을 통해 앞서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최근 정부가 뿌리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을 마련한 것은 매우 다행”이라며 “다만 이들 정책이 내실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중장기 로드맵을 빨리 만들고 이에 걸맞은 지원책을 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20대 청년시절 친구들이 대학에서 미팅과 축제를 즐길 때 컴컴한 공장에서 쇠를 깎았던 윤 대표는 그 친구들이 은퇴 이후를 걱정하는 요즘 금형산업 발전 방안과 국내 최고의 금형업체를 만드는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