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있으면 돈은 저절로! 자본주의 시대는 가고 '知本주의' 시대가 왔다"
“비용 대비 품질로는 우리와 대적할 상대가 없다.”

세계 2위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의 런정페이(任正非) 최고경영자(CEO)가 한 말이다. 화웨이가 연간 연구·개발(R&D) 직원 1명에게 쓰는 비용은 5만달러 정도. 지멘스나 노키아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화웨이의 세계 통신장비시장 점유율은 약 21%로 2위다. 런 CEO의 발언은 자사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기업 경쟁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런 CEO는 1988년 8명의 직원을 데리고 세운 화웨이를 12만명이 근무하는 거대 기업으로 키워냈다. 화웨이의 2010년 매출은 1852억위안이다. 그는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지멘스, 알카텔 루슨트 등 글로벌 통신장비업체들을 잇따라 제치며 화웨이를 에릭슨에 이어 세계 2위 통신장비업체로 일궈냈다. 화웨이는 100여개 나라에 네트워크와 통신 장비 제품을 공급 중이다.

그는 창업 이후 단 한번도 언론과 인터뷰를 한 적이 없을 정도로 ‘베일에 싸인 경영자’로 통한다. 하지만 그의 경영기법은 학계와 업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런 CEO는 2011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단돈 2만위안(330만원)으로 창업한 회사를 24년 만에 세계 2위로 끌어올린 비결은 무엇일까.

○비전을 제시하고 경쟁을 유도하라

런 CEO는 노력하는 직원만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직원들에게 늘 주지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냉정한’ 경영 방침은 자신의 인생역정에서 나온 것이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배움을 택했다. 전자계산기, 디지털테크놀로지, 철학을 공부했고 3개국어를 독학으로 마스터했다. 기술전문 학교 졸업 후에는 기술 통신병에 자원 입대해 공을 세우고 군 대표로 전국 과학대회에 참가, 전국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전역 후 그는 화웨이를 설립했다. 홍콩업체가 만든 통신장비의 일종인 ‘교환기(switchboard)’를 중국 시장에 판매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사업 초기 판매실적은 좋았지만 장기적인 비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외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 시장을 거의 독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회사의 물건을 가져다 파는 대행 판매를 벗어나기 위해 원천기술 개발에 나섰다.뛰어난 기술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지만 수중에 돈이 없었다. 그는 유능한 기술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그들에게 당장 큰 보수를 주지는 못하지만 화웨이가 업계 최고가 되면 성과를 함께 나누겠다고 약속했다. 런 CEO의 비전에 공감하고 기술연구에 관심이 많은 고급 인재들이 화웨이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 화웨이 중역들은 당시 입사한 사람들이다.

화웨이는 사내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유명하다. 두 명을 뽑으면 서로 경쟁시켜 한 명만 남길 정도다. 매년 성과 평가를 통해 하위 5%는 해고한다. 런 CEO는 “기업이 건강하려면 신진대사가 활발이 일어나야 한다”며 “아무 경쟁이 없는 회사는 죽은 회사”라고 강조한다.

군인 출신 CEO답게 직원들을 다그치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화웨이 직원들은 책상 한편에 접이식 야전 침대를 두고 생활한다. 화웨이에서는 ‘죽어야 산다’ ‘와신상담’ ‘자아비판’과 같은 용어를 일상적으로 쓴다. 런 CEO의 지시는 무조건 해내야 하는 ‘지상과제’다.

직원교육도 철저하다. 중국 선전에 있는 화웨이 본사에는 중국 정부가 공식 인증한 교육기관인 128만㎡ 규모의 교육센터 ‘화웨이 유니버시티’가 있다. 엑센추어 등 글로벌 컨설팅업체에 의뢰해 회계, 인사, 조직관리 등을 교육한다.

○“기술만이 살 길이다”

런 CEO는 화웨이 경쟁력의 원천은 기술력이라고 강조한다. 이 회사의 기본 경영 이념은 돈보다 기술력을 중시하는 ‘지본주의(知本主義)’ 철학이다. 이에 대해 런 CEO는 “자본(資本)주의 시대는 가고 지본주의 시대가 왔다”며 “신생 벤처기업의 미래는 오로지 기술과 지식에 있다”고 말한다.

기술 위주 경영은 창업 초기부터 계속되고 있다. 1990년대 초 중국 기업들이 부동산과 주식투자에 열을 올릴 때도 그는 기술 개발에만 전념했다. 지금까지도 매년 R&D 비용으로 순이익의 10%를 투입하고 있다. 화웨이 직원 중 약 46%가 R&D 인력이다. 런 CEO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겉모습보다는 내실을 중시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우직한 한우물 파기도 성공으로 이끈 요인으로 꼽힌다. 런 CEO는 통신장비 이외의 사업에는 관심이 없다. 그의 생각을 보여주는 ‘빨간색 무용화론’은 유명하다. 런 CEO는 “매혹적이고 신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빨간 무용화처럼 다른 사업 진출의 유혹은 뿌리치기 어려울 정도”라면서도 “그러나 빨간 무용화를 한 번 신으면 평생 춤춰야 하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이 신발을 신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기술 중심 경영의 성과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화웨이는 중국 미국 러시아 등을 비롯해 전 세계 17개 나라에 연구소를 두고 있다. 또 2008년과 2009년 국제특허 출원 건수 세계 1위와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 화웨이가 보유한 특허는 4만2000건 정도다. 4세대(4G) 이동통신기술로 주목받는 LTE(Long Term Evolution) 분야에서 세계 특허의 15%를 독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는 이미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을 포함한 세계 60여국에 LTE 상용 서비스와 시범 시스템을 구축했다. 2010년 말에는 100달러대(11만원)의 고성능 스마트폰을 선보였고 태블릿PC 사업 진출도 서두르고 있다.

○주변에서부터 중심부로 공략한다

화웨이 매출 중 75%는 해외에서 나온다. 전 세계 50대 통신사 중 45개사에 통신장비를 납품하고 있다. 런 CEO는 1990년대 말 중국 시장에서 화웨이의 성장이 본궤도에 오르자 더 큰 성장을 위해 세계 시장 진출을 계획했다. 더 큰 물에서 강자들과 경쟁해야 진정한 성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빠른 시간 내에 글로벌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던 시장을 빼앗기 위해 단계별 전략을 썼다. 농촌 공략 후 도시로 치고 들어가는 마오쩌둥(毛澤東)식 전법을 4단계로 구사했다. 첫 번째로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도 비슷한 홍콩에 진출해 성공을 거둔 뒤 러시아와 남미 등 기술 수준이 다소 미약한 신흥시장에 진출했다. 세 번째로 화교 인구가 많은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시장을 공략한 뒤 마지막으로 통신장비의 격전지인 유럽과 미국 시장 공세에 나섰다.

런 CEO의 최종 목표는 세계 1위 통신장비업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직원들에게 ‘늑대론’을 설파하고 있다. 그는 “세계 1위 통신장비 업체가 되려면 모든 임직원들이 늑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후각이 예민한 늑대처럼 늘 예민하게 제품 개발과 시장 개척 등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절대 굴복하지 않는 늑대처럼 과감한 공격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늑대처럼 임직원들이 서로 단결해야 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