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 등 대외 불안 요인들이 실물 경제에 본격적으로 전이되며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됐다.

지난해 4분기 국내 기업들의 실적을 보면 세계적인 경기 둔화가 수출과 내수 침체로 이어졌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미국 국가 신용등급 강등 이후 발생한 세계 금융시장 혼란으로 부진했던 지난해 3분기에 이어 기업들이 실적이 예상보다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88%가 예상에 못 미치는 실적 발표
세계적인 경기 둔화 등으로 국내 기업들의 4분기 실적 악화는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실제 성적표는 이를 반영해 하향조정한 시장의 전망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삼성전자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기업은 기대보다 못한 실적을 발표했다.

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전날까지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지난해 4분기 실적을 발표한 상장사 증권사들의 전망치(컨센서스)가 있는 곳은 43곳이다.

이 중 38개 기업의 영업이익이 기대에 못 미쳤다.

실적 발표 기업 88.4%의 실적이 예상보다 더 악화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등의 선전으로 지난해 4분기 5조3천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추정치를 9.42% 웃돌았다.

그러나 실제로 삼성전자의 실적도 좋은 것은 아니다.

반도체부문의 하드디스크드라이브 사업매각차익 등 일회성 이익 8천억원을 빼면 영업이익은 4조5천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사상 최대치였던 2010년 2분기의 5조원에 크게 못 미치는 규모다.

삼성전기는 4분기 영업이익이 990억원으로 추정치 562억원을 무려 76.26% 초과 달성했다.

그 외 제일기획, 아모레퍼시픽, 하이닉스 등이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내놨다.

그러나 다른 기업들의 실적 악화는 심각했다.

삼성테크윈은 영업이익 300억원 흑자가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27억원 적자였다.

케이피케미칼은 384억원 흑자로 예상되던 영업이익이 30억 규모로 줄어 92.23%의 괴리율을 나타냈다.

LG전자, LG이노텍, LG디스플레이 등 LG그룹의 간판 기업들의 영업이익도 예상보다 더 악화됐다.

삼성SDI, 대림산업, 금호석유, SK이노베이션, OCI 등 대형 기업들의 실적도 예상치에 크게 못 미쳤다.

현대경제연구원 김동열 수석연구위원은 "기업들의 실적 악화는 해외 불안요인과 그에 따른 교역량 감소 때문이다.

수출기업이 유럽과 미국 경기 부진에 따라 타격을 받았고 국내 소비와 투자에도 영향을 미쳐 내수도 침체됐다"고 분석했다.

◇IT부터 `차화정'까지 기대 이하
업종별로도 정보기술(IT)을 비롯해 지난해 국내 증시를 이끈 `차화정(자동차ㆍ화학ㆍ정유)'까지 대체로 시장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IT는 삼성전자와 삼성전기를 제외하면 예상에 크게 못 미쳤다.

SKC&C는 1천370억원의 4분기 순이익이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86억원에 그쳐 93.7%의 괴리를 보였다.

삼성SDI는 영업이익이 397억원 수준으로 추정됐지만 발표된 수치는 72% 적은 111억원이었다.

LG전자는 영업이익 231억원을 기록해 흑자로 전환했지만 시장의 기대에는 다소 못 미쳤다.

증권업계는 애초 584억원의 영업이익을 예상했다.

순이익은 409억원으로 예상됐으나 오히려 1천116억원 순손실로 나타났다.

자동차와 화학, 정유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화학은 케이피케미칼이 추정 영업이익 384억원에 비해 92.23% 적은 30억원을 발표했다.

금호석유와 OCI의 영업이익도 추정치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정유업계도 지난해 연간 실적은 호조를 보였지만 4분기는 예상보다 부진했다.

SK이노베이션의 4분기 순이익은 예상치 5천673억원에 크게 미달하는 1천563억원이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4분기 실적도 미흡했다.

현대차의 4분기 영업이익은 2조1천26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71.9% 증가했으나 시장 기대치보다는 낮았다.

증권업계 추정치는 2조2천614억원 규모였다.

기아차 역시 4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16.8% 증가했지만 시장 추정치에는 22.4% 모자랐다.

내수 업종으로 분류되는 통신의 부진도 눈에 띈다.

KT와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의 4분기 영업이익은 시장의 예상을 평균 30.8% 하회했다.

◇남은 실적 발표 기업 전망도 `흐림'
증권사들이 실적 예측치를 내놓은 기업들 가운데 아직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기업들의 전망도 어둡다.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발표를 앞둔 기업 중 비교 가능한 60곳 가운데 절반인 30개 기업은 지난해 3분기보다 영업이익이 감소하거나 적자 전환이 예상된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 흑자였으나 4분기에는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현대상선도 적자 폭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풍산(-83.11%), 영원무역(-70.7%), 녹십자(-68.3%), 아시아나항공(-66.9%), 롯데칠성(-58.4%), 호남석유(-50.8%) 등이 전분기보다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업종의 실적 전망도 밝지 않다.

KB금융(-50.6%), 기업은행(-45.8%), 신한지주(-29.6%), BS금융지주(-25.3%), DGB금융지주(-25.1%), 우리금융(-24.7%) 등도 실적이 악화될 전망이다.

1개월 전 추정치와 비교해도 기업들의 실적 전망이 악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증권사들이 1월5일 전망한 대우건설의 4분기 추정 영업이익은 1천960억원이었지만 이달 7일 914억원으로 44.9% 줄었다.

한화케미칼은 827억원에서 463억원으로 44.0% 감소했다.

기업들의 4분기 실적은 부진하지만 올해에는 다소 개선될 전망이다.

박형중 메리츠종금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기업 실적이 예상보다 좋지 않았는데 경기가 이제 서서히 돌아서고 있는 시점이어서 지금이 바닥으로 볼 수 있다"라며 "최근 유동성이 공급돼 주가가 상승하고 있는데 제조업 업황이 살아나고 미국과 중국 경기가 회복되면서 국내 기업들의 실적도 개선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율 강종훈 기자 doub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