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주식 양도차익 과세 추진에 대해 “대만식의 급격한 도입보다는 일본식으로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7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종구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주식시장 영향 등을 감안할 때 급격한 도입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처럼 단계적 도입이 바람직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급격한 대만식 실패…일본식 바람직"
박 장관은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어야 한다는 조세 원칙에 비춰서는 주식 양도차익 과세가 맞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그러나 “우리나라에 당장 도입하려면 주식시장 기반을 살펴야 한다”며 “현재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 등을 고려하면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공적으로 연착륙한 일본과 도입 1년 만에 철회한 대만의 사례를 비교해볼 때 한국의 지금 상황은 대만형에 가깝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대만은 1988년 충분한 사전 여론 수렴 없이 주식 양도차익 과세를 전면 도입했다가 발표 직후 한 달 동안 주가가 36% 급락하고 투자자들의 반발이 커지자 1년 만에 철회했다. 반면 일본은 주식 양도차익 과세를 1974년 시작했지만 전면 과세에 들어간 것은 1989년부터다. 장기간 과세 대상을 조금씩 넓혀간 것이다.

일본은 주식 거래세를 양도차익 과세와 병행하다가 1999년에야 폐지했다. 이 같은 단계적 도입으로 조세 저항을 줄이고 세수 감소를 막았다.

◆실익 신중히 검토해야

박 장관은 거래세 폐지와 양도차익 과세 도입에 따른 세수 확보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난해 증권거래세로 거둔 세수입은 6조8000억원 정도다.

박 장관은 “차익과 손실 모두 반영하는 방식으로 주식 양도차익을 균형있게 과세한다면 증권거래세만큼 세금을 거둘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식 투자에 따른 손실을 제외한 순양도차익에 매기는 세금 총량이 현행 거래세보다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박 장관은 “외국인 투자나 증권시장 발전 부분과 함께 종합적으로 검토해 로드맵을 만들고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가총액 100억원 이상 기업 주식에 대해서만 주식 양도차익 과세를 도입하자’는 권경석 새누리당 의원의 제안에 대해서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부분은 바람직하지만 민감한 문제인 만큼 신중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답했다.

◆주요 주주 과세부터 강화

박 장관의 이날 발언은 거래세를 전격 폐지한 뒤 양도차익 과세를 한 번에 도입하는 것은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확대하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주주와 주요 주주 과세를 확대하는 것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주식 양도차익 과세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주식의 경우 대주주 또는 3%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요 주주, 100억원 이상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에 한해서만 이뤄지고 있다. 코스닥 상장주식은 대주주 또는 5% 이상 지분 보유 주주, 50억원 이상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 등이 양도차익 과세 대상이다. 현재 비과세하고 있는 소액주주에 대해서는 세수 증가나 행정 비용 등 과세 실익을 충분히 따져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의견이다.

새누리당은 주요 주주 과세 요건을 ‘유가증권 상장기업 지분 3%, 100억원 이상 보유’에서 ‘2%, 70억원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재정부 세제실 관계자는 “정치권이 내놓는 방안들을 종합해 올해 세제개편안을 마련할 때까지 충분히 검토하겠다”며 “장기 보유 혜택이나 손실 이월공제 등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