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11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정치인 낙선·낙천 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앞선 총선 때의 낙선·낙천 운동이 부정부패 근절을 내세웠던 것과 달리 이번 총선에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정책 현안에 대한 찬반을 놓고 빚어진 운동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가 앞장선 낙선·낙천 운동이 과거와 달리 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환경운동연합, 민주노총, 한국노총, 전교조 등 70여개 단체들로 구성된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지난 27일 원전 확대를 주장한 찬핵 정치인 명단 11명(새누리당 10명, 민주통합당 1명)을 발표했다. 주최 측은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대재앙 이후에도 원전 확대를 외친 정치인들 위주로 명단을 만들었다”며 “해당 지역구를 중심으로 낙선 운동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보수 성향 인사 500여명이 주축이 된 ‘한·미 FTA지키기 범국민운동본부’도 한·미 FTA를 반대하는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낙선·낙천 운동은 진보단체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보수단체도 처음으로 뛰어든 셈이다. 주최 측은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에서 한·미 FTA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선거법에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한·미FTA 폐기’를 외치는 후보들의 낙선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6일엔 진보 성향 단체로 구성된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FTA 비준에 적극 참여한 정치권 인사 160여명의 명단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지난 14일엔 진보 시민단체로 구성된 ‘총선유권자네트워크’가 4대강 사업 추진에 적극 참여한 정치권 인사 30명을 발표했다. 총선넷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앞으로도 10여개 정책 현안과 관련된 낙천·낙선 운동 대상자들을 추가로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 같은 시민단체들의 잇따른 낙선·낙천 운동이 이번 총선에서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낙선·낙천 운동이 처음 시작된 2000년 16대 총선 때 전체 86명 중 68.6%에 달하는 59명이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당시엔 후보자들의 납세·병역 등 도덕성을 기준으로 명단이 선정됐다면 이번 총선 땐 특정 성향에 치우쳐 시민들의 호응을 얻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많다.

27일 찬핵 정치인 명단을 발표한 시민단체 관계자조차 “부정부패가 아니라 특정 정책 현안에 찬성한 정치인을 대상으로 선정한 것이라 고민이 많다”며 “원전 건설에 찬성하는 시민도 많기 때문에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털어놨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낙선·낙천 운동이 ‘반(反)MB’ 구호에 그치면서 여권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원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과거 낙선·낙천 운동을 펼쳤던 시민단체 출신들이 잇따라 기성 정치권에 들어오면서 정당성을 상실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