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선거의 해다.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놓고 여야 정치권의 선심성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복지 확대와 증세 등 국가의 중대사들이 진지한 논의 없이 표 논리에 따라 졸속 처리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경제부처 장관들과 긴급 인터뷰를 갖고 정치권의 선거공약과 경제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동안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강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청와대 정무수석과 국정기획수석, 고용노동부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는 현안에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직원들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소통을 늘리는 등 권위주의를 없애는 데 주력해왔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멕시코로 떠나기 하루 전인 지난 23일 기자와 만난 박 장관은 “선거 때문에 후세대에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며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이명박 정부 동안 경제가 파탄났다는 비판을 일부에서 받고 있다.
“이번 정부 들어 두 번의 큰 경제 위기가 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지난해 터진 유럽발 글로벌 재정위기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국 경제는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일자리를 예로 들면 재정위기 이후 일본은 일자리가 160만개, 미국은 620만개가 줄었는데 우리는 80여만개 늘었다.”
▶자화자찬 아닌가.
“한국 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국제기구나 외신, 신용평가사들도 비슷하게 하고 있다. 그런 인식이 반영돼 국가 신용등급이나 신용 전망이 상향 조정됐다. 물론 서민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있다. 지금은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쳐 서민생활 개선이라는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경기 부양을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곳간(재정)을 풀자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우리 경제의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고 체질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더 시급하다. ‘확장적 재정긴축’이라는 말이 있다. 돈을 많이 푼다는 ‘확장적’이라는 말과 ‘긴축’의 조합이 앞뒤가 안 맞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금 빚을 안 내고 돈을 많이 안 쓰면 단기적으로는 성장률이 낮아지고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성장 잠재력과 대외 신인도가 높아져 결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 ”
▶올해 긴축으로 간다는 뜻인가.
“과거처럼 확장적으로 가지 않고 알뜰살뜰 체력을 보강하려는 노력을 긍정적으로 봐주면 좋겠다. 다음 정권, 길게는 후세대를 위해 힘을 비축하자는 것이다. 물론 경기가 경착륙 기조로 가면 재정과 통화정책을 확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3%대 후반의 성장률이 예상되는 지금 국면이 경착륙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경기 확장으로 가면 결국 나중에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직접 비판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권의 모든 공약을 포퓰리즘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지속가능하지 않고, 재원 조달도 불투명한데 한쪽만 보고 가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정부가 복지 공약을 모두 시행하면 연간 43조~67조원이 들어갈 것이라는 추계를 발표한 것은 싸우자는 게 아니다. 실제로 돈이 얼마나 드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 정책은 돈이 워낙 많이 들어 집권해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속도 조절하시죠’라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특정 공약을 옳다 그르다고 판단한 것도 아니다. 정치권과 정부가 건강한 공론의 장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다. 호주나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에서는 공약에 재정보고서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그만큼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복지 확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복지 자체를 늘리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이 선진국에 비해 아직 낮은 편이다. 하지만 국민소득과 세금을 낼 수 있는 능력까지 같이 고려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 정치권의 복지 공약은 과도하다. 세금을 늘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지금도 기업 1%가 전체 법인세의 80%, 개인 1%가 전체 소득세의 37~38%를 부담하고 있다. ‘1% 과세’를 강화해서 얼마나 더 걷을 수 있으며 과연 해결이 되겠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복지 제도는 한번 도입하면 되물리기가 굉장히 어렵다. 4대강은 몇 년 하고 끝이지만 복지 제도는 계속 간다.”
▶야권은 4대강 청문회를 열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번 정부의 정책을 어떤 식으로든 검증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광우병 사태나 천안함 괴담 등과 마찬가지로 4대강도 오해를 많이 받았다. 걱정했던 것처럼 오염이나 홍수가 심해졌는지 객관적인 자료로 토론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은 바람직하다. 잘잘못을 가리자는 것은 아니지만, 홍수 방지 효과나 일자리 창출 등의 성과도 함께 봐야 할 것이다.”
▶청년실업 등 일자리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조금 답답하겠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다. 국가 고용전략 방안들을 하나하나 실천하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 나누기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근로 시간이 너무 길고, 상대적으로 소수가 일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또 ‘월화수목금금금’ 등 전일제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 당장 개선되기는 어렵지만 노사 합의로 좀 더 다수가 정상적으로 근무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효과는 어느 정도 나타날까.
“발효 때까지 미뤄졌던 대기 수요가 본격적으로 나타나 당장 도움이 될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몇 년 있어야 효과가 충분히 나타난다. 일부 사치품은 늘어난 수요 때문에 가격이 많이 안 떨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관세율이 내려가면 가격도 내려간다. 자연히 일자리도 늘어난다. 물론 FTA 체결과 활용은 별개다. 아세안과 맺은 FTA는 활용률이 굉장히 낮다. 한·미 FTA가 성과를 낼 수 있게 꼼꼼히 점검하겠다.”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책이 정치와 절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고 중립적으로 경제를 운용하겠다. 당장의 성과를 위해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다. 단군신화에서 마늘만 먹고 100일을 버틴 곰처럼 어렵더라도 조금 더 진득하게 참고 멀리 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