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주머니 없앤 진공청소기  대박…트리밍 잘하면 신사업 보이죠
스마트한 생각과 창의적인 발명은 흔히 비범한 사람들의 경험과 직관, 우연한 발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도 교육에 의해서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고,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뽑아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트리즈 기법 활용이다.

트리즈의 여러 방법 중 ‘트리밍(Trimming)’이란 기법이 있다. 정원에 있는 나무에서 삐쳐 나온 가지를 잘라내는 가지 치기란 뜻이다. 나무 가지도 전체를 볼 수 있어야 어떤 가지를 어떤 모양으로 쳐낼지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신제품, 신사업 개발도 관심 있는 기존 제품, 사업을 우선 분석해서 전체적으로 그려 보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용 진공 청소기를 살펴 보자.

초기 청소기는 먼지를 불어서 쓰레기를 날리는 방식이었다. 이후 먼지를 빨아 들이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100여년 동안 진화해 왔다. 관찰력이 뛰어난 한 발명가가 진공 청소기의 기본 작동 원리를 기반으로 문제점을 분석해 봤다. 모터-팬-먼지 주머니-필터-빨대통의 순서가 청소기의 일반적인 구조다. 먼지 흡입력이 처음에는 좋지만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먼지 주머니가 찰 때마다 갈아 주고 폐기해야 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이런 문제의 원인을 분석해 보니 모아지는 먼지들이 먼지 주머니의 미세한 구멍을 막아서 흡입력이 뚝 떨어지는 것을 알게 됐다.

엔지니어들은 모터의 흡입력을 더 높이고 먼지 주머니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청소기 성능을 조금씩 높여 갔다. 그러나 혁신적인 발명가는 트리즈의 ‘트리밍’기법으로 문제의 먼지 주머니가 아예 없는 진공 청소기를 상상했다. 청소기에서 먼지 주머니를 없애면 흡입력 감소와 먼지 주머니의 교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먼지 주머니가 없을 경우 먼지를 빨아들여 모으고, 공기와 분리하는 역할도 동시에 사라지게 되는 애매한 상황이 발생한다. 먼지 주머니 교체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흡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지 주머니가 없어져야 하고, 먼지 주머니의 고유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지 주머니가 있어야 한다는 물리적 모순이 생긴 것이다. 이럴 경우 트리즈에서는 시간, 공간, 조건에 의한 ‘분리’의 사고 방법으로 각각의 요구 조건을 나눠서 만족시키는 방법, 또는 다른 분야의 방법과 자원으로 대체해서 상반된 두 가지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법을 찾으라는 가이드가 있다. 먼지와 공기를 분리, 먼지를 모으는 기능을 하면서도 먼지주머니의 미세 구멍이 막혀 흡인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묘안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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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와 공기를 분리하기 위해서는 먼지와 공기의 차이점을 이용해야 한다. 먼지 주머니가 달린 기존 진공청소기는 공기와 먼지의 크기 차이를 이용했다. 미세한 구멍의 필터를 통해 먼지를 걸러내는 방식이다. 먼지와 공기는 크기 외에도 밀도, 무게의 차이가 있다. 이를 이용해서 분리하는 방법은 없을까. 공학 지식이 있는 분들은 원심 분리기를 연상해 낼 것이다. 먼지와 공기를 동시에 빨아들인 후 고속으로 회전시키면 무거운 먼지는 공기보다 더 큰 원심력을 받아 회전통 바깥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쯤 되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필터 방식 대신에 고속 원심 분리 방식을 체계적으로 분석, 문제가 되는 먼지 주머니를 없애고 대신 다른 방법, 자원으로 대체하면 된다. 이 원리가 바로 백과 사전에 ‘사이클론(Cyclone) 원리’로 명명돼 있었다. 개발자는 이런 기본 아이디어를 도출한 후 5년여의 연구·개발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명품 진공청소기를 만들었다. 이 혁신적인 발명가는 누구일까. 다음편에서는 발명가와 이 사람이 활용한 ‘트리밍 사고법’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자.

이경원 한국산업기술대 교수·한국트리즈학회 총무이사 lkw@kp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