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이고 정확한 독일인…그 뿌리는 철저한 '준법정신'
독일인들은 합리적이고 정확하며 투철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독일 기업과 거래를 해본 비즈니스맨이라면 느린 데다 매사를 너무나 꼼꼼하게 챙기고 융통성 없는 그들의 태도에 짜증이 났을 수도 있다.

느리지만 꼼꼼하고, 정확하며 안정성을 추구하는 독일인의 경향은 법 인식과 관련이 깊다. 독일인은 최하층부터 최상층까지 차별 없는 법 집행에 대한 관념이 뚜렷하다. 동시에 법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권익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식도 강하다. 부지불식간에 느껴지는 사회 구성원 간 법규 준수에 대한 압력도 상당하다.

이 때문인지 옷깃만 살짝 부딪쳐도 ‘미안합니다(entschuldigung)’는 말이 입에 붙은 독일인들은 정작 교통사고를 냈을 때는 ‘유감입니다(es tut mir leid)’라는 말로 대신하곤 한다. 실수를 인정하는 게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정확한 것을 선호하는 독일인의 이런 특성은 비즈니스 에티겟에서도 나타난다. 독일 기업과 미팅 약속을 정할 때는 반드시 최소 2주에서 한 달 전에 메일 등 서면으로 접촉해야 한다. 전화로 우선 상담 일정을 잡는 경우에도 메일이나 서면으로 다시 접촉해줄 것을 요청받거나 다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기 십상이다. 메일이 스팸으로 처리되거나 못 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전화로 수신 여부를 확인할 필요도 있다.

독일 기업인들은 협의한 사항에 대해 번복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또 회의나 상담 약속을 소중히 생각하고 지킨다. 따라서 약속을 잡을 때 가능한 시간을 미리 조정해 큰 변동이 없도록 해야 한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약속을 변경할 때는 미리 충분한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먼저 도착해 밖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정시에 들어가는 게 좋다.

미팅에서는 객관적으로 검증된 자료를 준비해서 이해시키는 게 중요하다. 흔히 ‘스몰 토크(small talk)’라고 불리는 미팅 내용과 관계없는 대화는 가급적 짧게 하는 게 좋다. 너무 말을 많이 하거나 감정적으로 이끌어 가려는 것은 신뢰하지 않는다.

계약서에 서명하는 일은 독일인들 준법 성향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다. 분쟁에 대비해 반드시 충분히 검토하고 의문점이 있는 조항은 서로 협의, 해석상 이견이 없도록 조율해야 한다. 계약 때 세부조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향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독일 바이어는 계약 조건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거의 모두가 클레임을 제기한다. 나중에 계약 조항과 다른 선적으로 인해 클레임을 당하거나 수출 대금을 제대로 못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또 미팅에서 약속한 사항은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독일 바이어들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 거래로 이어지기 힘들다. 독일 기업과의 비즈니스 미팅에서 적당히 요청을 수락하거나 미리 장담을 했다가 이행하지 못해 자신은 물론 한국 기업 전체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 사례도 꽤 많다.

유럽연합(EU) 차원의 다양한 환경 관련 규제가 강해지고 이에 대한 미이행 또는 위반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따르는 것도 독일 기업들이 모든 규정을 철저히 검토하고 준수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 때문에 독일인과의 비즈니스는 전반적으로 매우 느리게 진행되지만 한 번 결정되면 그 틀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느린 반응을 우리 정서식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처음에 반응이 없더라도 내부적으로는 실질적인 검토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비즈니스 관계를 정리할 때도 믿을 수 있는 새로운 파트너를 찾을 때까지 과정이 오래 걸린다.

독일 기업의 느린 의사결정이나 융통성 없어 보이는 행동에 답답해한 국내 기업이 있다면 독일인의 이 같은 준법 성향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분쟁이 생기면 법적 근거부터 찾는 그들에 대비해 평소 철저히 법규 공부를 해둔다면 성공적인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종태 KOTRA 구주지역 총괄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