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의류수출 강자 한세실업, 독자 브랜드로 영토 확장
섬유산업은 사양산업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답할지 모른다. 하지만 의류생산 한 우물만 파며 지금도 해마다 10~20%씩 성장하고 있는 국내 기업이 있다. 우리나라 의류 수출 전문업체 ‘빅3’ 중 하나인 한세실업이다.

한세실업은 ‘미국인 3명 중 1명은 한세실업 옷을 입습니다’라는 광고문구로 잘 알려진 회사다. 나이키, 갭, 랄프로렌, 아메리칸이글, 아베크롬비앤피치, 리미티드 등 미국인들이 즐겨 입는 유명 브랜드와 월마트, 타겟 등 미국 대형마트의 자체상표(PB) 의류를 만들어 연간 2억장 넘게 수출한다.

오랜 광고문구가 워낙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기에 수정을 하지 않았을 뿐 실제론 미국인 ‘3명 중 2명’이 한세실업 옷을 입는 셈이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제조자개발생산(ODM)이 전문이어서 국내 소비자들에겐 조금 멀리 느껴질 수 있지만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등의 해외 생산기지에서 2만7000명의 현지인을 고용, 한국 기업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곳이기도 하다.

1982년 설립된 한세실업은 만 30년이 되는 올해 매출 11억달러 돌파를 자신하고 있다. OEM·ODM 전문기업에서 벗어나 자체 브랜드 사업도 본격 확장해 ‘창조적 패션 디자인 기업’으로 진화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경쟁력의 핵심은 해외 생산기지 다각화

설립 당시 인천에서 공장을 운영했던 한세실업은 1988년 사이판에 첫 해외법인 설립을 계기로 본격적인 글로벌화의 길을 걸었다. 지금은 베트남, 인도네시아, 과테말라, 니카과라 등 4개국에서 7개 해외법인을 운영 중이다. 국내 제조원가가 상승하던 시기에 과감하게 해외 생산기지로 눈을 돌린 전략이 적중했다는 평가다.

한세실업이 원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해외 생산공장이다. 지역별로 역할이 특화돼 있다. 손재주 좋은 인력이 많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는 패션 전문브랜드인 나이키, 갭, 아메리칸이글, 리미티드 등의 의류를 만든다.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대미 수출에 무관세 혜택이 있는 중남미에선 대규모 물량을 발주하는 월마트, 타겟 등 대형마트와 백화점 제품을 주로 생산한다.

한세실업의 바이어인 글로벌 패션·유통업체들은 생산 위탁업체 후보군을 줄이고 우수 벤더(공급업체)와 집중 거래하는 ‘딥 앤드 내로(deep and narrow)’ 전략을 펼치는 추세다. 덕분에 한세실업의 공급물량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스웨덴 H&M과 계약한 것을 시작으로 스페인 자라·망고, 일본 유니클로 등 ‘패스트 패션’의 공룡 브랜드와도 잇따라 계약을 타진하고 있다.

이용백 한세실업 사장은 “동남아의 미얀마와 캄보디아, 중미의 아이티 등에 추가 진출해 생산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디자인 경쟁력 탄탄…자체 브랜드로 발 넓혀

한세실업은 30년간 노하우를 축적해 온 원단 개발과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바이어들이 대강의 스타일을 잡아주면 자체적으로 디자인을 완성해 샘플을 보낸다. 먼저 컨셉트를 잡아 바이어들에게 역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단순 임가공 수준인 OEM 비중이 줄어드는 반면 ODM은 계속 늘고 있다.

서울 여의도 본사에 있는 한세실업의 연구·개발(R&D) 센터에는 미국 파슨스, FIT 등 글로벌 명문 패션스쿨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2008년 3월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에도 디자인사무소를 냈다.

이런 역량을 바탕으로 한세실업은 자체 브랜드 사업에도 도전하고 있다. 2010년 10월 국내 10~30대 여성을 겨냥한 ‘NYbH(뉴욕 바이 한세)’ 브랜드를 론칭했고, 작년 8월 유·아동복 ‘컬리수’를 보유한 드림스코를 인수했다. 드림스코는 국내에 매장 180여곳을 운영 중인데, 앞으로는 중국 사업에 집중해 현지 매장을 매년 50개씩 늘릴 계획이다.

한세실업은 자사의 생산·디자인 역량과 드림스코의 브랜드 사업 노하우, 계열사인 인터넷몰 예스24·아이스타일24의 온라인 유통 노하우를 결합해 패션 비즈니스의 ‘3각 구도’를 완성한다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주회사인 한세예스24홀딩스의 김상률 경영기획팀장은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국내 브랜드를 추가 인수하는 방식으로 패션 비즈니스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젊고 빠른 조직…30년째 플러스 성장

창립 이후 한 번도 역성장, 적자, 감원을 경험한 적이 없는 ‘3무(無) 기업’. 한세실업은 이런 이색적인 기록을 갖고 있다. 전통적 굴뚝산업인 섬유업종에서 30년 된 회사답지 않게 의사결정이 빠르게 이뤄지는 것도 강점이다.

최미경 한세실업 재정부장은 “젊은 팀장급이 80% 이상의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다”며 “회사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해외 바이어들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세실업 신입사원들은 해외법인에서 1년 반~2년간 근무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은 뒤 본사로 복귀한다. 본사 직원은 600명이지만, 해외법인에서 현지인 2만7000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협력업체 인력까지 포함하면 5만명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현지 직원들과 기업 비전을 공유하고 융합하는 현지화 전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사장은 “아무리 한세실업이 대규모 투자를 했다 하더라도 인간적으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문화를 만들지 않으면 공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세실업은 전체 생산량의 50%를 차지하는 베트남을 포함, 해외 진출 지역에서 현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장학사업과 문화교류 등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한세실업은 올해 매출 11억달러를 돌파한 뒤 2015년 15억달러를 넘어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