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백성 전답 마구 뺏은 왕실…조선이 망한 또다른 이유
조선은 왜 망했을까. 그동안 성리학 때문에 망했다거나 지방 관리를 잘 감독하지 못해 망했다는 견해가 많았다. 《나라를 망친 조선의 임금들》의 저자는 ‘궁방 절수(折受)’에 주목한다. ‘궁방’은 왕실의 일부였던 궁실과 왕실에서 분가·독립한 궁가를 통칭한다. 떼어 받는다는 뜻의 ‘절수’는 토지를 나라에 바친다는 것이다.

“개간자가 주인이 된다”는 대원칙을 버리고 왕권을 앞세워 백성의 전답과 산림, 망망대해까지 탈취했던 ‘궁방 절수’는 조선 후기가 되어 극에 달한다. 저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겨우 살아남은 백성을 위로하고 돌봐야 할 책무를 뒤로 한 채 제 자식과 제 식구 챙기기에 급급했던 왕들의 부도덕과 무능함을 고발한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발췌한 근거 자료들을 통해 조선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왕자와 공주가 장성해 사궁(私宮)으로 나갈 때 수확이 확실하고 안전한 전답으로 주기 위해 조정도 모르게 은밀히 전답을 건네줬다는 자료, 선조 27년 큰 흉년이 들어 경기도 일대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을 정도가 되고 군량이 부족해 군인들 모두 도망친 와중에도 내수사 전세(田稅)만은 선조가 손대지 못하게 해 군량으로 쓰이지 못한 기록 등 수많은 사료를 끄집어낸다.

임진왜란 이후 선조는 14남 10녀의 자식들에게 전쟁으로 피란한 유민들이 일시적으로 버려둔 진전이나 폐경지 등을 주인 없는 땅이라 하여 대규모로 절급하고 어장을 나눠주는 등 본격적인 절수를 했다.

또 군량미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황무지로 있던 충청도 내 40여처의 사찰위전을 훈련도감에 소속시키고 수원의 독성 부근, 황해도의 노전지대 등을 대규모 둔전 설치를 위해 절급했다. 절수 대상이 전국의 산림, 하천, 간석지, 어전, 어장, 염전 등으로 확대되면서 일반 백성의 허다한 전답이 탈점됐다. 양반 지주의 토지 점령을 더 촉진시킨 궁방 절수는 백성의 절반 이상을 노예에 가까운 전호(佃戶)로 전락시키고 양민보다 더 많은 노비를 양산했다. 저자는 이런 악폐가 조선 후기 약 200년간 지속적으로 도를 더해가며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왕이 절수를 통해 제 식구만 챙기고 있는데 부호·양반 지주들과 향촌 지배세력들이 세금을 제대로 낼 리가 없고, 결국 세금과 부역은 양민에게 전가됐다”며 “국력이 약해지고 국가기강이 날이 갈수록 허물어져가는 것은 필지의 귀결”이라고 말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