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인생 2막' 대비…보험상품 주도권 보장성→연금·저축성 이동 중
2010회계연도(2010년 4월~2011년 3월) 한국 보험회사들의 총 보험료는 134조원(생명보험 83조원, 손해보험 51조원)으로 2010년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1%를 넘었다. 2011년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에는 15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GDP 대비 보험료 비율인 보험침투율은 세계 6위, 아시아 3위다. 연간 보험료 규모로는 세계 10위, 아시아 3위에 해당한다.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해 시장이 큰 것이다.

이 같은 비율을 통해 거시적 성장성을 측정할 경우 한국 보험산업의 성장은 10년 전에 이미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보험시장 성장은 마진이 높은 보장성 보험에 기인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보장성 보험의 성장에 기여한 것은 우리 사회가 외환위기 이후 겪고 있는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 사회는 경제 패러다임 측면에서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으로 급선회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의 낮은 사회보장 수준, 급속한 고령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현상 등이 부각됐다. 결국 한국 보험산업의 성장은 우리 국민들이 안고 있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다.

○건강관련보험 위주의 성장

한국의 보험산업에서 보장성 보험의 대부분은 사망 또는 의료비로부터의 위협을 보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10회계연도 한국 보험사들의 보장성 보험료는 총 51조원으로 생명보험이 29조원, 손해보험이 22조원을 각각 차지했다. 생명보험의 보장성 보험 상품을 보면 종신보험 보험료가 17조2000억원으로 59%를 차지해 가장 높다. 이어 질병보험(10조1000억원) 35%, 상해보험(1조6000억원) 6%의 순서다. 손해보험은 상해보험이 34%로 가장 높고 질병보험 26%, 통합보험 20% 순서다. 실손의료비담보가 상해·질병·통합 보험에 포함돼 있으므로 우리는 세 상품을 묶어서 ‘건강관련보험’으로 해석하는데, 이 경우 손해보험의 건강관련보험료는 17조4000억원으로, 전체 손해보험 보장성 보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이른다. 결국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합친 건강관련보험(손해보험의 통합·질병·상해보험과 생명보험의 질병·상해보험) 보험료는 29조원으로 생·손보 합친 보장성 보험료의 57%에 이르는 셈이다.

○연금·저축성 보험 수요 급증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지속됐던 보장성 보험의 성장은 둔화되는 시점에 진입하고 있다. 대신 연금·저축성 보험으로 수요가 옮겨가고 있다. 지금까지 미래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 활발히 구매된 보장성 보험의 기능은 주로 사망, 의료비에 대한 대비가 주를 이뤘다.

수명이 길어지는 데 따른 위험에는 건강과 관련한 비용 증가 위험 외에도 소득이 감소하는 위험도 빼놓을 수 없다. 재산 증식 및 저축 차원에서 많은 투자가 이뤄진 부동산의 활기가 예전같지 않고, 베이비 부머들의 퇴직이 본격화하고 있다. 1970~1980년대 30%를 넘어섰던 우리나라의 저축률은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낮아졌다. 지난해 기준 가계저축률은 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5%가량)보다 낮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노후에 소득이 변변치 않은 데 따른 위험은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보장성 보험에서 다시 연금·저축성 보험으로 성장의 모멘텀이 옮겨갈 가능성이 낮지 않다고 전망하는 이유다. 실제로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11년 중 세제적격 연금저축의 적립금은 75조원으로 15조원 불어났다. 전년에 비해 25%나 늘어난 것인데 소득공제 한도가 400만원으로 늘어난 것 외에도 부쩍 늘어난 은퇴 이후의 생활에 대한 관심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금·저축성 보험 성장에 따른 시장 변화

노후를 대비하는 연금·저축성 보험은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금융상품에서 만기가 가장 길다. 당국도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 저축을 장려하는 차원에서 금융상품에 세제혜택을 부여하고, 금융회사가 망할 경우에 대비해 일종의 보증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많은 금융 소비자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보험료를 지불하고, 노후 설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품에 대해서는 단순히 낮은 수수료를 선호한다기보다는 회사의 신뢰도, 외형, 이미지 등 재산을 보호하고 미래의 연금 지급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여부와 같은 비(非)가격경쟁 요인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외환위기를 전후해서 종신보험이 주로 외국계 보험사에 의해 판매된 것도 이 같은 의사결정 요인들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당시와 차이점이 있다면 지난 10년간 소비자들이 금융회사에 대해 많은 경험을 쌓았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외국 대형 금융회사들의 몰락을 목격했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의 금융사 선택 기준이 적잖이 달라질 환경이고, 과거처럼 대형 외국 보험사라고 해서 무작정 선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 대목에 삼성생명이 국내에서 모색해야 할 길이 놓여 있다고 본다.

이철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 chlee@truefrie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