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가르드 - 메르켈, 유럽기금 증액 충돌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신용평가업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프랑스 대형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강등하며 위기감을 키웠다. 반면 재정위기 확산을 막기 위한 ‘방화벽’을 키우는 방안을 놓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최대 경제대국 독일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자유낙하’하는 프랑스

월스트리트저널은 23일 “신용평가 업체 S&P가 소시에테제네랄 등 프랑스 주요 4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하향했다”고 보도했다.

S&P는 이날 소시에테제네랄과 크레디아그리콜, BPCE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낮췄다. 카세데데포에콘시그나시옹의 신용등급도 ‘AAA’에서 ‘AA+’로 한 등급 강등했다. BNP파리바의 신용등급은 ‘AA-’로 변동이 없었지만 신용 전망은 ‘부정적’으로 평가됐다. S&P는 “프랑스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은행들의 신용등급도 영향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프랑수아 바루앵 프랑스 재무장관은 S&P의 이번 조치에 대해 “시장과 투자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평사의 조치와는 반대되는 행보를 취할 것”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등급 강등에도 자금 조달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 13일 프랑스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이후 주요 은행들까지 등급이 떨어지자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독일 경제주간 비르츠샤프츠보헤는 “프랑스의 국가부채 규모는 이미 2009년부터 심각한 수준까지 높아졌고 상황은 계혹 악화됐다”며 “공무원들이 1주일에 32시간만 일하고, 1년에 12주의 휴가를 갖는 프랑스 경제는 ‘자유낙하’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IMF발 “방화벽 두 배로” 논란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재정위기 ‘방화벽’ 확대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라가르드 총재는 독일 싱크탱크인 독일외교정책협회에서 “유로존이 즉각적으로 단호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1930년대 대공황 같은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며 “현재 5000억유로 규모인 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ESM)을 크게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독일에 추가 부담을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라가르드 총재가 재정위기 방화벽의 구체적 확충 규모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최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재가 최소 7500억유로에서 1조유로 규모까지 ESM을 증액하자고 주장한 것을 고려하면 비슷한 수준의 ESM 확대를 요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IMF가 유럽의 재정안정기금을 두 배로 키우자고 주장한 것에 대해 메르켈 총리는 “추가적인 기금 확대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메르켈 총리는 기자회견을 갖고 “당초 ‘계획대로’ ESM을 출범시킬 것”이라며 “독일은 언제나 유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을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슈테판 자이베르트 독일 총리실 대변인도 ‘독일 정부가 엄격한 재정관리를 전제로 ESM을 7500억유로로 확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오스트리아와 룩셈부르크 재무장관들도 “방화벽이 두터워지면 좋지만 그렇다고 구제기금을 마냥 늘릴 수는 없다”며 IMF와 각을 세웠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