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이번엔 비리 공무원…아버지 연민 부각시켰죠"
최민식은 출연작마다 뚜렷한 인물을 그려내는 연기자다. ‘쉬리’의 냉혹한 북한군 장교, ‘올드보이’(2003)에서 영문도 모른 채 옥살이를 하는 비운의 사나이, ‘악마를 보았다’의 끔찍한 연쇄살인마는 그 분야의 롤모델처럼 관객들의 뇌리에 새겨져 있다.

다음달 2일 개봉하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도 그는 이전에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추접하게 살지만 연민을 자아내는 최익현이다. 25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대본이 ‘전과’처럼 두꺼웠지만 죽죽 읽히더군요. ‘골 때리는’ 인간의 중구난방 같은 이야기였어요. 이권에 얽혀 돌아가다 가족 품으로, 다시 범죄조직으로 옮아가는 게 정통 드라마투르기가 아니었지만 머릿속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더군요. 전형적인 깡패영화였더라면 출연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경주 최씨 인맥을 이용해 1980년대 부산을 장악한 최익현을 연기했다. 수많은 비리로 해고될 처지에 놓인 세관 공무원 최익현은 압수한 필로폰을 밀매하면서 조직폭력배 최형배(하정우)와 만나게 된다. 그들은 경주 최씨 종친이다.

형배는 주먹으로, 익현은 로비로 사업권을 따내 큰돈을 벌지만 서로를 배신하며 추락한다.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정실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했다.

“윤종빈 감독이 경찰공무원이던 아버지와 관련한 어린 시절 기억을 저장했다가 풀어놓은 겁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환멸이 아니라 연민이었어요. 성숙된 시각이죠. 최익현의 인생은 지리멸렬한 것 같지만 강인한 생존력을 보여줍니다. 우리 아버지도 바깥에서 저렇게 사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소와 풍자 등 비판의식은 잊지 않되 주인공에 대한 연민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는 최익현에 녹아들기 위해 몸무게를 10㎏ 정도 늘렸다.

“빈총을 넣고 다니는 대목은 최익현을 상징하는 중요한 설정입니다. 파국의 순간에도 그는 총으로 쏘는 게 아니라 때려요. 어떻게 보면 정말 못난 놈이죠. 차라리 펜치를 가져오지. 남자의 전형적인 허세죠. 그는 진짜 총이 있어도 쏘지 못하는 인간이었을 거예요.”

최민식은 배역을 맡기 전 영화 속 세상에 먼저 공감하는 절차를 거친다. 그 인물과 세상에 동화되지 않으면 연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흥행작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북한군 송강호 같은 배역 대신 작은 영화 ‘파이란’을 선택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쉬리’를 막 끝냈는데 또 인민군을 맡기는 싫었죠. 놀부(그는 박찬욱 감독을 ‘놀부’같이 생겼다며 그렇게 불렀다)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걸 그랬어요. 하지만 ‘파이란’의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부부 이야기가 정말 가슴 아프게 와 닿더군요.”

그는 이 세상이 궁금한 만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없다면 연기가 고역일 것이라고 했다.

“창작은 습관처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하청받아 납품하는 직업은 더더욱 아니고요. 연기는 제게 낭만이 아니라 생존이에요.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태어나 다른 것을 해본 적이 없어요. 연기 외에는 면역력이 없는 존재죠. 남들처럼 장사를 하면 쫄딱 망할 거예요.”

그는 나이를 먹으니까 예전보다 연기하는 게 좀 편해졌다고 한다.

“좀 둥글둥글해졌어요. 하지만 현장에서 소통이 안되면 다시 예민해져요. 프로들은 그래야 합니다. 인간관계를 앞세우다 일을 망치면 그 관계마저 파탄나고 말거든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좋은 파트너가 됩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