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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스토리] 경영의 신 vs 꿈꾸는 기술자…'전자왕국' 일본 이끈 '쌍두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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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의 라이벌 (20) 마쓰시타 - 소니

    관리의 달인 마쓰시타
    전국 유통망 조기 구축해 고속성장
    시장·매장 정보 철저히 수집…"수돗물처럼 싸게" 경영 철학

    뮤즈로 불린 소니 창업자
    가지고 싶은 물건 만든 이부카
    워크맨·리모컨 등 혁신제품 개발, 1940~1970년대 약진 이끌어
    [스토리&스토리] 경영의 신 vs 꿈꾸는 기술자…'전자왕국' 일본 이끈 '쌍두마차'
    [스토리&스토리] 경영의 신 vs 꿈꾸는 기술자…'전자왕국' 일본 이끈 '쌍두마차'
    “소니의 베타맥스 방식 제품은 100점짜리입니다. 하지만 마쓰시타의 VHS 방식은 200점이에요.”

    1970년대 후반 가정용 비디오 기술 방식을 놓고 큰 싸움이 났을 때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이 한 얘기다.

    당시 마쓰시타(현 파나소닉)와 소니는 비디오 시장 패권을 거머쥐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사의 기술적 우위를 강조하며 세몰이를 하고 있었다. 베타맥스 방식을 적용한 소니의 비디오는 화질이 좋고 사용하는 테이프의 크기도 작았지만 녹화시간이 1시간에 불과했고 무게도 20㎏이나 나갔다. 반면 VHS 방식을 사용한 마쓰시타 제품은 2시간 녹화가 가능했고 무게도 13㎏이었다.

    이 싸움은 가볍고 실용적인 기능을 중시한 소비자들이 마쓰시타의 손을 들어주면서 끝났다. 소니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본 기업들이 VHS규격을 선택함으로써 마쓰시타는 소니와의 전쟁을 큰 승리로 이끌었다.

    ○중학교 중퇴 vs 기술 천재

    마쓰시타와 소니는 일본을 ‘20세기 전자왕국’으로 끌어올린 쌍두마차다. 양사는 TV, 카세트, 비디오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일본 경제의 글로벌화와 전후 일본의 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양사의 경영 스타일은 많이 달랐다. 비디오 규격은 마쓰시타의 승리로 끝났지만 일본 전자산업의 대표주자 자리는 소니에 돌아갔다. 마쓰시타가 기존 제품을 약간 손질하고 모방해 대량생산하는 데 치중했다면 소니는 늘 새롭고 창의적인 제품들을 선보였다. 때문에 일본 내에서 소니는 ‘최첨단’ 이미지를 가졌던 반면 마쓰시타는 ‘원숭이 흉내(사루마네)’ 기업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양사의 차이만큼이나 창업자들의 성향도 달랐다. 1894년 일본 와카야마현에서 태어난 마쓰시타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쌀 선물 투자에 실패하면서 소학교를 중퇴하고 9세 때부터 자전거 가게 점원으로 일했다. 1910년 오사카전등주식회사 견습사원으로 입사해 일을 배우다 1913년 간사이 상공학교(중학교)에 진학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2년 만에 중퇴하고 1918년 마쓰시타전기기구제작소를 설립했다.

    이와 달리 1908년 일본 도치기현에서 태어난 소니의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는 정규 교육과정을 충실히 거쳐 와세다대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부터 과학기술자로 두각을 나타내 그가 졸업 작품으로 만든 ‘광전화’ 장치는 1933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발명부문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첫 직장인 사진화학연구소도 그의 재능을 알아본 사업가의 추천으로 입사했다. 이부카에 대한 일본 재계의 평가는 ‘상상력이 풍부한 창조자’라는 것이었다.

    ○‘경영의 신’ vs ‘창조의 뮤즈’

    반면 마쓰시타에 대한 별칭은 ‘판매의 신’ ‘경영의 신’ 등이었다. 그는 창업 초기에 개발한 전구소켓과 전자식 램프를 팔기 위해 일찌감치 전국 판매망을 구축했다. 이 판매망은 고도성장기 대중소비 시대의 탄탄한 유통채널을 제공해 마쓰시타그룹의 고속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판매에 집중하면서 마쓰시타는 정보의 중요성에도 눈을 떴다. 회사 내부와 시장 정보를 얻기 위해 ‘경리사원’이라는 직책을 뒀다. 경리사원은 마쓰시타가 직접 선발해 사업부나 자회사로 파견했다. 사업부장이나 자회사 사장들은 이들에 대한 인사권이 없었다. 경리사원들은 마쓰시타에게 시장 상황을 직접 보고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다. 사업부장이 대규모 투자가 걸린 사업계획을 마쓰시타에게 보고하면 마쓰시타는 이미 경리사원에게 보고받아 사업 추진에 대한 나름의 정보를 갖고 있었다.

    마쓰시타는 또 ‘판매의 마쓰시타’를 지탱하는 음지 조직으로 판매점주를 관리하는 ‘보신부’를 뒀다. 이 부서는 개별 점주들의 판매능력은 물론 음주 도박 등에 대한 정보를 파일 형태로 모았다. 후임자들은 이 파일 하나만으로 판매점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고 관리자 교체에 따른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마쓰시타가 관리의 달인이었다면 이부카는 경영자라기보다는 몽상가적 기질이 다분한 발명가에 가까웠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잠시도 참지 못했고 심지어는 장난감도 항상 뜯어본 뒤에야 아들에게 선물로 줬다고 한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아이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추억한다.

    이부카는 새로운 기술을 응용할 수 있는 신제품을 예견하고 기술자들이 만들어내도록 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카세트 방식이 좋아. 작고 가벼운 기계가 다루기도 좋고 판매에도 유리할 것”이라고 말하면 기술자들은 이 말을 따라 기존 제품보다 작고 가벼운 제품을 만들어냈다. 직접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경우는 없었다. 가지고 싶은 물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자기테이프와 자기테이프 리코더,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텔레비전, 컬러비디오 프린터 등 194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소니의 약진을 이끈 제품들이 모두 이런 식으로 개발됐다.

    기술자들은 ‘뭔가 재미난 일을 한번 벌여보자’라고 말하는 이부카를 자신들의 ‘뮤즈’라고 불렀다. 이부카 역시 기술자들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1946년 도쿄통신공업(소니의 전신)을 모리타 아키오와 공동 창업하면서 ‘나의 첫째 목적은 기술자들이 기술의 기쁨과 그 사회적 책무를 인식하고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안정된 일터를 만드는 것’이라는 내용의 설립 취지문을 공표할 정도였다.

    ○은퇴 후엔 교육사업에 관심

    두 사람이 닮은 점이 있다면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다. ‘수돗물이 무궁무진하고 값싼 것처럼 우리 회사의 제품도 싸게 보급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줘야 한다’는 마쓰시타의 ‘수도철학’은 그의 경영관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경영철학은 고도성장기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에 딱 맞는 것으로 마쓰시타 경영방식의 지침이 됐다.

    이부카도 새로운 것을 구상할 때 요즘 말로 ‘사용자환경(UI)’을 우선시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보다 편하고 즐겁게 제품을 이용할 수 있느냐를 중시했다. 소비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워크맨이었다. 또 편히 누워서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만든 것이 리모컨이었다. 그는 마음이 깃들어 있지 않은 물건을 만드는 사업은 오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1970년을 전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부카는 은퇴 후에 유아교육을 위한 ‘유아개발협회’를 설립하고 정신지체인을 위한 ‘희망의 집’을 여는 등 교육사업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이부카의 은퇴를 앞당긴 또 다른 요인은 개인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기가 힘겨웠기 때문이다. TV와 비디오 등에 대한 천재적인 영감을 갖고 있었던 이부카도 장년, 노년의 길로 접어들면서 다가오는 컴퓨터 시대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마쓰시타는 1961년 회장으로 물러나면서 일상 업무와 멀어졌지만 회사에 대한 영향력은 유지했다. 사위인 마쓰시타 마사하루를 사장으로 임명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임원회의에서 마사하루를 강하게 질책하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결국 1977년 마쓰시타는 야마시타 도시히코를 사장으로 임명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열었다.

    마쓰시타는 두 개의 연구소를 설립해 사회활동에 매진했다. 일본에 두 번 다시 전쟁의 비극이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 일종의 ‘행복추구운동’을 하는 PHP연구소와 행정·정치 리더 양성이 목적인 마쓰시타정경숙이 그것이다. 1925년 구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치에 환멸을 느낀 마쓰시타는 비전을 가진 정치가의 등장을 염원했다. 하지만 그것이 단기간에는 무리가 있음을 느끼고 장기적으로 교육에 투자함으로써 훌륭한 정치가를 배출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목적으로 설립된 마쓰시타정경숙은 노다 요시히코 총리를 배출하는 등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부카와 마쓰시타가 키워낸 소니와 마쓰시타는 아직 건재하다. 마쓰시타는 2008년 자사의 글로벌 브랜드인 파나소닉으로 사명을 바꿔 글로벌 시장을 누비고 있다. 하지만 제조 역량 쇠퇴, 디지털 시대로의 경영체제 전환 지연 등으로 그 위세는 예전 같지 않다. 20년 전만 해도 까마득한 격차를 유지했던 한국의 삼성 LG에도 밀리고 있다. 영원한 승자가 없는 시장에서 소니와 마쓰시타는 과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까.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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