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교육당국이 전국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실태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인다. 우편으로 모든 학생들의 가정에 설문지를 보내 답변을 받은 뒤 분석해 대책에 반영하기로 했다. 학생들에게 ‘소원수리’를 받겠다는 것이다.

학부모단체와 교사들은 이 방안에 대해 회의적이다. 포괄적이고 일률적인 설문으로는 다양화·지능화·첨단화되는 학교폭력의 세부 유형을 밝혀내기 힘든 데다 지역·학급·학년·성별 특성과 차이를 비교분석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언론보도 등을 통해 학교폭력 실태와 심각성이 어느 정도 공개된 상황이어서 뒤늦은 전시행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폭력 실태 조사와 대책 마련을 위해 전국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교 3학년까지 558만여명을 대상으로 우편 설문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18일 발표했다.

사는 곳과 학교명·학년·성별까지만 쓰도록 하는 무기명 방식으로 이뤄진다. 조사 내용에는 최근 1년간 당한 학교폭력 피해와 장소, 구체적인 사례 등이 포함된다.

설문에 제시되는 피해 유형은 △협박·욕설 △집단따돌림 △강제 심부름 △약취(돈이나 물건 빼앗는 행위) △상해·폭행·감금 △성추행·성폭력 △인터넷 채팅·휴대전화 등을 이용한 폭력 등 7가지다. 피해 및 목격 사례와 학교폭력 근절 방법을 구체적으로 쓰는 주관식 문항도 있다.

설문지는 오는 31일까지 발송되며 학생들은 한국교육개발원(KEDI) 사서함으로 다음달 10일까지 회송하면 된다. 교과부는 학교폭력이 근절될 때까지 매년 1월 학교폭력 실태를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던진다. 장은숙 참교육학부모회 회장은 ‘뒷북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장 회장은 “그동안 정부는 민간 단체에 학교폭력 실태 조사를 위탁해왔고 현황 파악도 상담사례를 취합하는 수준이었다”며 “정부 차원의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는데 이제서야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종일 뉴라이트학부모연합 상임대표는 “전수조사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며 전시행정”이라며 “설문조사보다는 교사의 권한 축소와 과도한 학생인권 보장 등 원인 분석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성호 수송초등학교(서울 강북구 번동) 교사(좋은교사운동본부 간사)는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으면 이벤트성 대책으로 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상당수 학생들이 학교폭력을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가 부모에게 미안해서인데 부모 앞에서 사실대로 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학교폭력의 전체적인 경향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세분화된 유형이나 지역·학급·학년·남녀 간 차이 등은 분석하기 힘들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진지하게 설문에 응할지와 설문 회수율이 얼마나 될지도 불투명하다. 교과부는 설문 회수율 목표를 20%로 잡고 있다. 분석 비용 외에 설문지를 보내고 받는데만 20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교과부는 예상하고 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