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냄새' 맡은 월가, 실리콘밸리에 '올인'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제품을 구매하면 포인트를 지급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톱게스트’를 개발한 제프 루이스는 지난해 12월 회사를 이즈레즈소프트웨어에 매각해 큰 돈을 벌었다. 계약서에 서명한 순간부터 루이스가 가장 많이 받은 전화는 지인들의 축하 전화가 아닌 금융회사들의 러브콜이었다.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UBS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은행의 자산관리담당 고위 임원들이 그를 고객으로 모시기 위해 잇따라 전화를 걸어왔다. 루이스는 “한 은행은 내가 전화 응답을 하지 않자 담당 임원과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러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오더라”며 “월스트리트의 끈질김에 놀랐다”고 털어놨다.

◆글로벌 은행 ‘실리콘밸리 러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유행으로 실리콘밸리에 다시 호황이 찾아오면서 월스트리트 금융회사들이 이 지역 신흥 부자들을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규제 강화로 마땅한 돈벌이를 찾기 어려워진 월스트리트가 미국에서 유일하게 ‘돈 냄새’가 나는 실리콘밸리에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 이들은 전 세계에서 수천명의 직원들을 해고하고 있지만 실리콘밸리에서만큼은 인력을 확대하고 있다.

NYT에 따르면 JP모건은 최근 실리콘밸리 중심 지역인 팰러앨토에 930㎡ 규모의 사무실을 새로 냈다. 될성부른 기업에 일찌감치 돈을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JP모건은 이외 지역에서는 1000여명 규모의 인력 감축을 진행 중이다. 이미 작년 하반기에 1300명을 감원한 골드만삭스도 샌프란시스코에서 내년까지 인력 30%를 추가로 확충키로 했다. UBS는 이미 2008년부터 이 지역 자산관리 담당 직원 수를 2배로 늘려놨다. 최근 필라델피아에서 실리콘밸리로 자리를 옮긴 골드만삭스의 조지프 카말다는 “은행들이 사내 최고 인력들을 실리콘밸리에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갑자기 부를 거머쥔 젊은 창업가와 엔지니어들을 자산관리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월가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회사를 상장했거나 상장을 준비 중인 징가 페이스북 등의 직원들을 일찌감치 포섭하지 않으면 자칫 경쟁사에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 페이스북 등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경쟁이 될 만한 창업기업들을 빠르게 사들이면서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되는 창업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모든 인맥 총동원

은행 직원들은 소셜네트워크 구인·구직 사이트인 링크트인 등을 통해 고객 정보를 얻은 후 전화나 이메일로 접근을 시도한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개인 인맥이다. 위치정보 서비스업체 고왈라의 고위 임원인 앤디 엘우드는 회사가 페이스북에 인수된 후 여러 은행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지만 자신의 자산을 관리해줄 회사로 골드만삭스를 택했다. 골드만삭스 담당 직원이 이미 수개월 전부터 엘우드의 여자친구와 친분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IT 트렌드나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영업에 어려움을 겪는 은행원들도 있다. 메릴린치의 고위 임원들은 30세 이하 직원들에게 ‘젊은 실리콘밸리 고객들에게 자신을 어필하는 법’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