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악재지만…유럽계 자금 이탈 우려
새해 들어 반등을 시도하고 있는 국내 증시가 프랑스 등 유로존 9개국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대형 악재를 만났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13일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내린 것을 비롯해 유럽 9개국의 등급을 떨어뜨렸다.

프랑스 신용등급 강등은 지난해 11월부터 가능성이 제기돼 증시에 어느 정도 선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유럽계를 중심으로 외국인 투자자금이 이탈하면서 충격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주부터 시작되는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어닝시즌)도 증시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외국인 순매도 전환 우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외국계 자금의 급격한 유출이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13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2733억원어치를 순매수해 코스피지수가 작년 말보다 50포인트가량 반등하는 동력을 제공했다. 하지만 신용등급이 떨어진 프랑스 등의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 이를 보유한 유럽 은행들이 자산가치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국내 증시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 외국인 투자가 다시 순매도로 돌아설 수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됐을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유럽계 투자자는 작년 8월 국내 주식을 3조5649억원어치 순매도한 것을 시작으로 5개월 연속 매도 우위를 보였다. 유럽계 투자자의 지난해 국내 주식 순매도 규모는 15조1000억원에 달했다. 채권시장에서도 지난해 3조4000억원의 유럽계 자금이 순유출됐다.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 규모가 커지더라도 단기적인 충격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 지난해 11월부터 제기돼 국내 증시에 선반영됐을 것이란 점에서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인의 추가 매도 규모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코스피지수 박스권의 하단이 다소 낮아질 수는 있지만 주가가 급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국채 발행 결과 주목

프랑스 신용등급 강등이 대형 태풍으로 번질지, 예고된 악재에 그칠지는 이번주 예정된 유럽 주요국의 국채 발행 결과와 오는 18일 재개되는 그리스 국채협상 타결 여부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프랑스(16일) 스페인(17일) 등 이번에 등급이 강등된 9개국 중 5개국이 이번주 국채를 발행한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국채 발행에 실패하는 국가가 나오고 그리스 정부와 민간 채권단의 국채 교환 협상이 지연되면 신용등급 강등의 부정적 영향이 증폭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용등급 강등이 유럽 당국의 정책 대응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영원 HMC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유럽 국가들이 정책 공조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30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매입 확대 등 실효성 있는 방안에 합의한다면 시장 불안은 가라앉을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 이익 추정치 하향 조정

16일 하나투어를 시작으로 국내 기업의 지난해 4분기 어닝시즌이 개막된다. 전문가들은 실적 추정치가 꾸준히 하향 조정돼 증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추정치 하향 조정으로 투자자들의 기대 수준이 낮아진 만큼 실적이 기대치에 못 미치는 ‘어닝쇼크’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예상했다.

동양증권은 200개 주요 상장사의 작년 4분기 순이익 추정치가 23조1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5.8%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이재만 동양증권 연구위원은 “작년 4분기 실적 발표 후에는 올해 실적이 개선될 종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며 “디스플레이 반도체 항공 상사 업종의 실적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