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 "갑상샘암 수술대에서 또 다른 희망 꿈꿨죠"
영화 ‘댄싱퀸’이 설 연휴 극장가에 흥행 바람을 불러올 기대작이다.

초등학교 동창인 남편과 아내가 우연한 기회에 서울시장 후보와 댄스가수의 길을 각각 걸으면서 벌이는 소동을 웃음과 눈물로 펼쳐낸다. 황정민과 엄정화는 실명으로 서울시장 후보와 부인역을 연기했다. 1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엄정화(43)를 만났다.

“시사회 반응을 보니 이전 작품들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다들 재미있다고 야단이에요. 하지만 정민씨와 저는 절대 속으면 안 된다고 다짐하며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해요. 흥행이란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이니까요. 아무튼 기분은 산뜻해요. 자꾸 말하면 복이 달아날 것 같아서 흥행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을래요. 호호.”

이 부부의 얘기는 현실 밀착형 코미디로 버무려졌다. 부부의 출신 학교는 고려대와 연세대이며 극중 이름은 황정민과 엄정화다. 각자의 꿈을 중시하는 세태, 참신한 인물을 요구하는 정치 풍토를 반영한 데다 몇 분마다 재미있는 상황으로 웃음 폭탄을 이끌어낸다.

“제작자인 윤제균 감독이 오래 전부터 이 작품 이야기를 했어요. 시나리오에도 엄정화와 황정민이라고 표기돼 있어 운명적으로 받아들였죠. 실명으로 나서는 게 무섭기도 했어요. 댄스가수 출신인 저와 극중 엄정화를 동일시할 수 있다는 게 걱정됐어요.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어 보고 실제의 저와는 전혀 다른 얘기니까 다른 인물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극중 엄정화는 주부로 살다가 어릴 적 꿈을 펼치기 위해 10대 걸그룹이 판치는 가요계에 30대 여성그룹으로 새바람을 불러온다.

“제가 가수로 무대에 섰던 것과 극중 여성그룹으로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 전혀 다르더라고요.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아니라 시장 후보인 남편과의 관계라는 상황 속에서 노래를 하니까요. 제가 불렀지만 제 노래라고 할 수 없더군요.”

극중 아줌마와 무대 위 엄정화의 모습도 다르다. 아줌마는 망가졌지만 가수 엄정화는 화장발로 섹시하다.

“저의 망가진 얼굴을 그대로 보여준다 해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아요. 원래 청순하거나 예쁜 타입이 아니니까요. 편하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쪽을 선택해요. 에어로빅 강사로 호피무늬 옷을 입은 것은 저로서는 살신성인한 거예요. ”

남편 역 황정민 후보는 민심을 사로잡는다. 정견발표에서 다른 후보처럼 이런저런 육아대책을 늘어놓지 않고 당선된 후 시민들과 함께 고민해보겠다고 말한다. 대신 그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분유값이 얼마인지 안다.

“정직하고 진실한 정치인을 원하는 대중의 바람을 집어넣은 거죠. 황정민 후보처럼 순수한 마음을 지닌 정치인이라면 저도 뽑겠어요. 하지만 남편으로서는 혼나야죠. 변호사이지만 마음이 약해 (남의 사정을 봐주다 보니) 돈을 벌지 못해요. 마누라가 에어로빅 강사를 하며 밥벌이를 하니까요. 다만 극중에서처럼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꿈을 응원하면서 살아가는 부부상은 바람직하지요.”

2010년 6월 갑상샘암 수술을 받은 그는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내가 열심히 살았지만 뭘 남겼을까, 살면서 중요한 것을 놓치지는 않았나, 그런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며 “그때 선행을 많이 베풀기보다는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