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끝은 네가 완성하라" 괴테의 천재성 일깨운 어머니
새해를 시작하는 이때쯤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녀교육 성적표’ 때문에 희비가 엇갈린다. 자녀가 천재이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마는 자식농사만큼 부모의 바람대로 이루기 힘든 것도 없다.

흔히 자녀교육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가 회자된다. 다방면의 체계화된 과외로 세계적 대문호가 됐는가 하면 33세에 귀족(남작)의 지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괴테가 천재성을 발현하게 된 데는 무엇보다 부모의 역할이 컸다. 여관업을 하던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아버지 요한 카스파어 괴테는 명예직인 황실고문관을 재력으로 얻었지만 평생 직업을 갖지 못했다.

신분적 지위에 콤플렉스를 느낀 부친이 아들만은 당당한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아버지는 괴테에게 문학과 예술, 언어, 종교 등 전 과목에 걸쳐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게 했다. 열 살의 나이에 괴테는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등 고대 그리스와 로마 작가들을 섭렵했다.

괴테의 어머니 카타리나도 괴테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데 영향을 주었다. 어머니는 독일어를 읽는 수준이었지만 괴테를 잠재울 때 전래동요를 자장가의 리듬에 맞춰 불러주었다. 카타리나는 괴테가 잠들기 전에 이야기를 한 편씩 들려주면서 결말 부분은 들려주지 않고 완성을 해보라고 했다. 이야기의 뒷부분을 상상하며 추리하고 창작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던 것이다.

괴테가 천재성을 발현하는 데 영향을 미친 또 한 사람으로 시인이자 극작가인 프리드리히 폰 실러가 꼽힌다. 실러는 괴테보다 열 살 연하였지만 10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10년 이상 우정을 나눴다. “자네는 내게 또다시 청춘을 안겨주고, 나를 또다시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네.” 실러가 46세로 요절하자 괴테는 자신의 ‘존재의 반’을 잃었다며 슬퍼했다.

괴테를 키운 것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빼놓을 수 없다. 아버지가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고, 괴테 역시 두 번이나 이탈리아 여행을 했다. 부친은 아들이 20대에 혼란을 겪고 있을 때 이탈리아 여행을 권유했다. 당시 바이마르에서의 공직 생활로 바빴던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을 미뤘다.

괴테는 마침내 37세 생일날 밤 마차에 몸을 싣고 이탈리아 여행길에 올랐다. 당시 괴테는 오랜 공직 생활로 녹초가 되어 있었고 ‘충전’이 필요한 시기였다. 바이마르에서의 생활은 안정된 반면 창작은 침체상태였다. 2년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은 다시 예술의 세계로 돌아가는 재탄생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내가 로마 땅을 밟은 날은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내 삶이 진정으로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한다”며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을 전후로 인식의 문을 새롭게 열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발견한 ‘고전의 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스 비극을 새롭게 쓴 《이피게니아》는 여행 중에 완성한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의 천재성을 완성하게 한 무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에게 불행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괴테는 아들 아우구스트에게 자신의 비서였던 요한 페터 에커만(《괴테와의 대화》 저자)을 동행시켜 자신의 여정대로 이탈리아 여행을 하게 했지만 로마 여행 중에 그만 요절하고 말았다.

최효찬 < 연세대 연구원·자녀경영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