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화곡동의 한 사립 유치원에 다니는 일곱 살(만 5세) 아들을 둔 직장인 황모씨(35)는 최근 유치원 입학 설명회에 갔다가 기분이 상해 돌아왔다. 올 3월부터 유치원에 내야 할 한 달 교육비가 10만원이나 올랐기 때문이다.

1개월 기본 수업료는 42만원으로 지난해와 같았다. 그러나 유치원에서 하던 영어수업이 폐지되고, 대신 같은 재단이 운영하는 유아 영어학원(수업료 9만원)에 등록해야 한다는 게 달랐다. 오후 6시까지 아이를 맡기는 종일반 비용도 월 8만원에서 9만원으로 올랐다. 결국 황씨는 지난해보다 18% 오른 유치원비를 매달 내게 됐다. 최근 5년간(2006~2010년) 유치원비 인상률 36.2%(통계청)와 비교해도 급등한 수준이다.

황씨는 “(선생님이) 학부모의 80%가 이미 동의했다며 결정을 재촉하는데 말이 선택이지, 돈 더 내기 싫으면 다른 곳을 알아보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부랴부랴 인근 유치원 세 군데를 알아봤지만 이미 정원이 차 이 유치원을 선택했다.

◆정부 올해 1조1805억원 투입

올해부터 만 5세 어린이를 둔 가정에 월 20만원의 보육료를 지원하는 ‘5세 누리과정’이 도입되지만 이처럼 많은 민간 유치원들이 영어 수업료 등 각종 명목으로 유치원비를 인상하면서 지원비는 바로 유치원으로 가게 돼 이 제도의 근본 취지가 무색해질 판이다. 올해 5세 누리과정에 정부가 투입하는 예산은 1조1805억원, 지원 대상 유아는 45만2405명이다.

다수 사립 유치원들은 유치원비 인상을 위해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 필수 과목을 새로 편성하거나 전에 없던 행사를 추가하기도 한다. 경기 파주시 A유치원에 올해 7세 아들을 보낼 정모씨(39)는 “가격은 그대로 둔 채 포장량을 줄여 슬그머니 가격을 올리는 제과업체나 유치원이 다를 게 뭐냐”고 항변했다.

유치원 입학 전 학부모들이 유치원비를 정확히 알아내기도 쉽지 않다. 전화를 걸어 구체적인 비용을 문의해도 두루뭉술한 금액만 일러준다.

성북구의 서모씨(41)는 “유치원에 전화하면 비용은 밝히기 곤란하다며 방문부터 하라고 한다”며 “설명을 한참 한 뒤에야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비용을 보여준다”고 했다.

나름대로 이름이 난 유치원은 ‘유치원 방침에 따르지 않으려면 나가면 된다’고 밀어붙이기도 한다. 서씨는 “상담 중에 ‘유치원비가 너무 올랐다’고 했다가 ‘질 좋은 수업과 비용 중에 선택하라’는 얘기까지 들어야 했다”고 전했다.

◆교과부 실태조사 효과 낼까

그러나 유아교육법이나 지방자치단체 조례 등 어디에도 유치원비 인상을 단속할 근거조항은 없다. 유아교육법에는 사립 유치원비는 원장이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5세 누리과정 도입을 앞두고 유치원비 기습 인상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전국 3900곳의 사립 유치원 납입금 전수조사에 들어갔지만 학부모들은 냉소적이다.

주부 김모씨(34)는 “감독 당국이 전수조사에 나선다 해도 같은 재단 영어학원의 등록비나 학기 중 인상분에 대해선 손쓸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며 “오히려 전수조사 결과가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 5세 누리과정

올해부터 정부가 유치원·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5세 어린이 가정에 부모 소득과 관계없이 월 20만원(국·공립 유치원은 5만9000원)을 지원하는 제도. 작년까지는 소득 하위 70%(월 480만원) 이하 가구 아동에게만 매달 17만~39만4000원을 지원했다. 지원 금액은 2013년 월 22만원, 2016년 30만원으로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