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으로 두들겨맞는 대한약사회
대한약사회가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리고 있다. 안으로 의약품 편의점 판매를 놓고 일선 약사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밖으로는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과 전쟁을 벌여야 할 처지다.

약사회는 지난달 23일 일반의약품의 편의점 판매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면서 의약품의 편의점 판매가 사실상 무산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약사회 집행부는 마라톤회의를 열고 시대적 흐름과 국민 편의를 감안, 24시간 운영되는 장소에서 필수 일반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꿨다.

약사회 관계자는 “내부 반발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총선·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끝없는 논쟁이 이어질 바에는 차라리 우리가 먼저 양보하고 결단하자는 취지였다”며 “더 이상 치졸한 이익단체로 비쳐져선 안 된다는 집행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선 약사들의 반발은 예상보다 컸다. 경기도약사회와 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약사모), 전국약사연합 등 약사단체들은 “국민건강을 지키는 무거운 책임을 버리고 이명박 정부의 종 노릇을 자처한 약사회 집행부는 즉각 해체돼야 한다”고 반박 성명을 냈다. 지역 약사회별로 대한약사회 집행부 퇴진서명도 뒤따르고 있다. 일부 단체들은 김구 회장이 운영하는 성남 모약국에서 무자격자가 의약품을 판매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약사회 집행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또 있다. 새로 약국을 내는 20~30대 젊은 약사들이 이번 편의점 판매 허용에 반발, 지역 약사회에 신상신고(약사회 회원 가입 및 회비 납부 절차)를 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 더구나 기존 회원들의 회비 납부율도 현저하게 떨어지는 추세다.

약사회 관계자는 “요즘은 회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회비 납부를 독려하는 것이 주된 업무가 됐다”며 “하지만 ‘약사회가 해준 것이 뭐가 있느냐’고 큰소리를 쳐 무안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약사회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밖으로 의사들과도 한판 전쟁을 벌여야 한다.

지난달 27일 전의총이 ‘전국 53개 약국을 약사법 위반으로 당국에 고소하겠다’고 선언한 데 대해 다음날인 28일 약사회도 ‘전의총이 불법 약국 53곳을 고소한다면 의료기관의 불법행위를 2배로 찾아 맞고소하겠다’고 대응하며 판을 키웠다. 이에 전의총은 최근 ‘약사회 고발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내고 “국민들과 함께 20배의 (약사)불법행위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약사회와 전의총이 서로의 불법행위를 찾는 전면전에 들어간 모양새다. 이를 두고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약사회의 대승적 결단에 찬성하는 약사도 상당수 있는 만큼 현 집행부의 퇴진운동이 계속 동력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다만 곳곳에서 갈등이 터지는 상황에 현 지도부의 위기의식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