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거진 검·경 수사권 갈등 "시민 위해 수사권 있는데…" 민생 치안 공백 우려
경찰청이 전국 일선 경찰에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거부하는 ‘수사실무지침’을 내려보내 검·경 수사권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민들은 자칫 검·경 간 갈등이 장기화돼 학내 폭력 등 민생 치안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경찰청은 3일 ‘검찰이 경찰에 수사지휘를 할 수 있지만 검찰에 접수된 내사 및 진정 사건은 접수 거부할 수 있다’는 등 17가지 조항을 담은 수사실무 지침을 일선 경찰서에 내려보냈다고 밝혔다. 대구 수성경찰서가 지난 2일 대구지검 내사지휘 사건 접수를 거부한 것도 이 지침에 따른 것이다. 이는 그동안 검찰이 관행적으로 의뢰해오던 진정 사건을 더 이상 수사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사실상 경찰이 원리원칙을 내세워 ‘준법투쟁’을 선언한 셈이다.

경찰은 우선 그동안 검찰이 관행적으로 경찰에 의뢰해 수사해오던 진정 등의 사건을 더는 대신 수사하지 않기로 했다. ‘하청 수사’ 관행의 고리를 끊겠다는 것. 통상 고소·고발은 범죄 혐의가 비교적 분명해 수사 대상에 해당하지만 진정이나 탄원, 첩보 등은 수사의 전 단계인 ‘내사’ 사안인 만큼 검사가 지휘할 대상이 아니라는 게 경찰 측 시각이다.

또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 중단·송치명령 권한을 ‘수사 과정에서 사건 관계인의 인권이 침해받을 우려가 현저한 경우’로 한정했다. 경찰 수사 절차에 이의가 제기되거나 △관련 사건을 2개 이상 기관이 함께 수사하는 과정에서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때 △경찰관의 불법 체포·감금·폭행·가혹행위가 있었을 경우에만 수사 중단·송치명령이 가능하다고 규정해 사실상 검찰의 수사지휘를 거부했다.

경찰의 내사활동에 대해 관련 기록과 증거물을 검사에게 제출하도록 한 것도 내사 종결 후에 보내겠다는 원칙을 세워 내사 과정에서 검사의 지휘도 거부했다. 검찰의 내사나 진정 사건은 접수 단계부터 거부해 검사 수사 사건에 대한 송치 전 지휘 범위를 줄였다.

경찰은 검사의 대면보고 요구도 그동안 속칭 ‘길들이기’나 ‘심부름 시키기’로 악용됐다고 판단, ‘사건이 복잡해 설명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반드시 따를 의무는 없다고 명시했다. 또 앞으로 모든 검찰의 지휘는 서면 또는 형사사법시스템(KICS)을 통해서만 받는 것으로 원칙을 정했다. 다만 천재지변이나 긴급한 상황, 현장지휘 등 서면지휘가 불가능한 상황인 경우 추후 서면지휘를 요청할 수 있게 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경찰의 수사권 거부와 관련, “법과 시행령을 통해 수사권 조정이 마무리됐는데 갈등을 지속·증폭시키는 것은 수사권이 권한이기에 앞서 국민을 위한 의무임을 간과한 오만”이라며 “경찰은 더 이상 갈등을 조장하지 말고 산적한 민생 치안 해결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선 경찰들은 “(수사실무지침은) 불법도, 명령 거부도 아니며, 그동안 관행으로 이뤄졌던 하청 수사에서 벗어나 민생 치안에 더욱 주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주장했다.

경찰청 지침에 따라 검찰의 수사 지휘를 거부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2일 대구 수성경찰서에 이어 3일 인천 중부경찰서와 부평경찰서는 인천지검이 수사를 개시하기 전 내사 지휘한 사건 2건에 대해 접수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중부경찰서에서 접수를 거부한 사건은 ‘누군가 나를 죽이려 한다’며 80대 남성이 검찰에 진정한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평경찰서 측은 “사건 접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용 파악을 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선주/이현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