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획] "소통 不在시대…'국가 리더십' 키워드는 경청과 설득"
올해는 세계적으로 선거의 해다.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치르는 국가만 58개국이다. 각 나라 국민들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리더십을 선택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로저 포터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는 “다양한 욕구와 불평불만이 분출되는 사회와 시대일수록 설득하는 리더십과 경청하는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하버드에서 20여년간 대통령학을 가르쳐온 포터 교수는 “지도자는 국가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비전을 왜, 어떻게 달성해야 하는지 국민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대통령의 덕목을 제시했다. “이상을 실현하는 동참자로 국민들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단순한 관람객으로 팽개쳐 버리지 말라”는 게 대선 후보들에게 던진 주문이다. 포터 교수를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대통령이란 어떤 자리인가.

“대통령은 국가를 이끄는 최고 지도자다. 당연히 과(過)보다는 공(功)이 더 많아야 하는 참으로 어려운 자리다. 하지만 대통령에게 거는 국민들의 엄청난 기대에 비해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대통령은 의회와 중앙은행, 그리고 규제당국과 권한을 나눠 가지고 있다. 예컨대 미국은 통화정책이 중앙은행(Fed)의 독립적인 결정에 좌우된다. 재정정책도 의회와 함께 결정해야 한다. 대통령의 정책은 글로벌 경제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대통령 개인의 능력을 넘어서는 제약이다. 미국 대통령이 갖는 영향력은 1인 권한이 막강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의 힘이 미약하다는 말인가.

“그런 뜻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비전을 제시한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비전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연결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한다. 매우 힘들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특히 선택은 지도자가 해야 할 몫이다. 어떤 국민들은 부를 재분배해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국민들은 경제를 성장시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버리고 취할 것을 지도자가 선택해야 한다.”

▶결국 소통 능력으로 보이는데.

“그렇다. 국민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나를 믿어 달라, 나를 따르라는 일방적인 방식이 있는가 하면 내가 목표를 제시하고 함께 가자고 설득하는 소통이 있다. 후자가 더 실효성이 있지 않을까. 설득하려면 왜 이 목표를 달성해야 하고, 어떻게 달성해야 할지 설명해야 한다. 위대한 소통자(communicator)가 되려면 내 목표에 동의하도록 국민들을 이해시키는 훌륭한 설득자(educator)가 돼야 한다. 소통하는 언어도 쉬워야 한다. 리더가 아무리 자신감이 있고 현명해도 국민들이 그의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반(反)월가 시위도 소통의 문제인가.

“반월가 시위는 일부 국민들이 좌절감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좌절감의 원천은 혼란스럽고 광범위하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에너지를 모아 유용한 방향으로 이끄는 일이다. 이들의 좌절감을 해소해주는 가장 큰 열쇠는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고 생각한다. 민간 분야에 인센티브를 줘서 경제를 성장시키도록 유인하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사람들은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기보다 그저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데 집중한다. 진정한 지도자는 우려와 좌절감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사람이다. 반월가 시위에 동조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응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포퓰리즘이 문제 아닌가.

“대중 인기영합주의는 유혹적이다. 거의 항상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코스다. 포퓰리스트는 ‘여러분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말하는 리더다. 여러분을 탐욕스러운 기업인과 은행가들로부터 보호해주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는 사회를 분열시키는 정책이다. 이 진영이 저 그룹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저 그룹은 또 다른 무리를 우려하게 만든다. 이런 식이라면 더 이상 국민이라는 거대한 팀이 작동하지 못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국민들은 모두가 전쟁 동참자이며 저마다 승리에 기여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병사나 장군들은 물론이고 비행기를 조립하고, 군 식량을 만드는 국민들이 그랬다.”

▶대통령 참모의 역할은.

“대부분 대통령은 모든 분야에 정통하지 않다. 조예가 있다는 특정 분야에서도 아주 뛰어난 전문가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게 된다. 내가 듣고 싶어하는 것을 말해주는 참모보다 내가 필요한 게 뭔지 고언해줄 수 있는 참모를 옆에 둬야 한다. 막상 현실에서는 달콤한 말을 해주는 참모를 두기 쉽다. 언제든지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참모를 두는 것은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기업과 유지해야 할 관계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기업인들은 정치 리더들이 정말 우리 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궁금해 하고 우려하기도 한다. 정치 지도자들이 우리를 충분히 이해해준다면 우리도 다르게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훌륭한 리더는 역시 훌륭한 경청자다. 기업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기업인들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그랬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그랬다.”

▶친(親)기업 정책을 펴야 한다는 말인가.

“대통령은 특정 그룹에 친, 반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모든 국민들의 대통령이다. 모든 국민들에게 책임감을 갖고 있다. 기업이나 노조, 특정한 이익 그룹에 편향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승리감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축구경기에서 승리를 일궈낸 팀과 같다. 감독이 특정 선수가 골을 넣어 경기에서 이겼다고 하면 다른 선수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몇 명이 잘 해서 이긴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협력을 잘 해서 승리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리더는 모든 국민들이 정책의 협력자이고 동참자라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지도자가 한 쪽 진영에 편향적이면 못마땅한 다른 국민들은 참여하길 거부하고, 단순 관람자로 머물러 있게 된다.”

▶단임제와 중임제 중 어떤 게 나은가.

“새 지도자는 전임자가 국정을 엉망으로 망쳐놨다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군사 정책은 평가할 만하다. 그는 조지 W 부시 전 정부의 외교·군사 정책이 잘 갖춰져 있다고 판단했다. 국무부에서 부시가 임명한 인재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유임시켰다. 현명한 리더는 변화를 위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전임자가 달성한 좋은 정책을 유지하고 인재들도 유지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정책 트렌드를 만들고 싶어한다. 전임자의 과오만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

▶전임자와 다르게 보이고 싶을 텐데.

“누가 공을 세웠는지 신경쓰지 않는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한하다는 말이 있다. 민주당 소속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공화당이 낸 정책 아이디어와 정책을 대거 수용했다.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등이 그런 사례였다. 공화당은 정책을 도둑질했다고 비난했지만 그는 공화당 정책을 재포장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이 뛰어났다. 클린턴은 보수(공화당)와 진보(민주당)라는 당리당략과 이념에 매몰되지 않은 실용적인 대통령이었다. 그는 공화당 아이디어라도 좋으면 채택해 문제의 해법을 찾아냈다.”

▶후진국일수록 대통령 가족이나 친인척의 부패와 비리가 많은데.

“미국이 위대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세 가지 때문이다. 우선 미국 국민들은 자유를 믿는다. 우리 자신이 우리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지시하거나 요구할 수 없는 가치다. 두 번째는 법치를 믿는다는 것이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된다. 대통령이나 일반인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똑같다. 세 번째는 평등이다.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다. 그래서 미국은 대통령과 대통령 주변의 부패와 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후진국은 진정한 자유, 법치, 기회의 평등이 없다.”

■ 로저 포터 교수는

20년간 대통령학 가르쳐…대선후보 롬니와 '절친'

로저 포터 교수(66)는 하버드 케네디스쿨과 백악관을 넘나들면서 이론과 실무 경험을 겸비했다.

1974년부터 제럴드 포드 전 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정책위원회 사무국장 및 특별보좌관을 지낸 뒤 1977년 케네디스쿨 교수진에 합류했다. 이어 1981~1985년 로널드 레이건 정부 때 백악관 정책개발 국장 및 경제자문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1985년 다시 하버드에 복귀한 후 1989~1993년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경제 및 국내 정책 보좌관으로 일했다.

주요 저서로는 ‘대통령의 정책 결정’, ‘효율성, 형평성, 정당성:새 천년의 다자적 무역시스템’ 등이 있다.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공화당 대선후보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절친하다.

케임브리지=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