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약칭 금노)이 주축인 한국노총이 민주통합당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주요 금융 관련 현안들이 거꾸로 가고 있다. 세법개정안이나 예산안 등에 대한 국회 논의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금노’가 강력하게 반대해왔던 ‘농협중앙회 사업구조 개편(금융부문과 농업경제부문 분리)’이나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등은 휘청이고 있다.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받았던 저축은행 피해구제법도 여야 협상 과정에서 거래의 대상으로 되살아났다. 민주통합당이 한노총의 핵심세력이자 금융권 화이트칼라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금노를 의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이 국회와 정부 관계자들의 얘기다.

지난 16일 출범한 민주통합당 주요 주주인 한국노총 내부에서 강한 발언권을 갖고 있는 금노는 앞으로 석 달밖에 남지 않은 농협중앙회 사업구조 개편을 반대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노조가 금융부문과 농업경제부문을 분리하는 구조개혁을 2017년으로 미뤄야 한다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협중앙회 노조의 상부 단체인 금노의 김문호 위원장이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에 오른 뒤 ‘농협 사업구조 개편을 5년 연기하자’는 방안이 민주통합당의 의견으로 굳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민주통합당은 지난 20일 국회를 정상화하면서 한나라당으로부터 ‘정부의 (6조원) 출연 약속이 이행되도록 촉구하고, 안 될 경� 연기를 검토한다’는 양보를 얻어냈다. 이는 예전의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약속한 합의를 뒤엎은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출범하기 전에는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가 여야 합의로 정부가 정한 4조원보다 많은 6조원을 지원하되 ‘1조원은 정부가 현물출자하고 5조원에 대해선 이자보전 방식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내년 예산안에도 이자보전 지원액을 정부안보다 1000억원 많은 2500억원을 반영해 예결위로 넘긴 상태였다.

정부 관계자는 “당초 민주통합당도 6조원 출연을 요구하지 않고 이자보전 규모를 5조원으로 늘리면 수용한다는 방침이었다”며 “민주통합당 내부에서 최고위원과 대표를 뽑는 선거가 진행 중이어서 그런지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금노 출신 대의원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모럴해저드' 저축銀 피해 구제법도 부활 조짐

金勞 눈치보는 민주…금융현안 역주행
금노는 또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를 저지하는 데에도 총력을 쏟아붓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론스타에 대한 금융감독 당국의 감독부실 등을 문제 삼으며 ‘감사원 감사’를 청구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라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감사원 감사청구는 과거 민주당 시절엔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노총이 민주통합당에 합류한 이후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국회법 127조에 따르면 국회가 감사를 의결하면 감사원은 3개월 이내에 그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엔 중간보고를 거쳐 감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론스타 관련 감사원 감사는 국회가 2006년 3월 감사청구를 의결해 이미 한 차례 이뤄진 바 있다.

야당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감사원이나 금융당국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국회에서 감사청구가 의결되면 감사원은 아무래도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회 관계자는 “지난 25일 감사원이 ‘론스타 문제는 과거에 감사했던 사안이고 이후 달라진 외부 환경이 없어 감사의 실익이 없다’는 내용을 정무위에 배포했다”고 전했다.

감사원의 감사가 시작되면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 마지막 행정 절차인 ‘자회사 편입승인’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법적으로야 자회사 편입승인 절차를 진행할 수 있지만 감사원이 감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공무원이 용감하게 일을 처리하겠느냐”고 말했다. 국회 감사청구의 최대 수혜자는 금노, 그 중에서도 하나금융에 매각되는 것에 반대하는 외환은행 노조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저축은행피해구제법도 슬그머니 부활할 조짐이다. 국회 정무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저축은행 피해구제법은 2008년 8월 이후 영업정지된 부산저축은행 등 19개 저축은행 가입자의 5000만원 이상 예금과 후순위채에 대해 6000만원까지 전액 보상하는 내용이다.

당초 한나라당이 부산의 표심을 잡기 위해 정부재정을 투입해 5000만원 초과 예금자의 예금액 일부를 보상해주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포퓰리즘’ 논란에 휩싸여 성사되지 못했다. 민주당에서도 우제창 의원 등이 저축은행에 3년간 3000만원 한도의 비과세예금을 허용하고 대신 성금을 내게 해서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현실성이 적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주 야당이 주장하는 론스타 국정조사 문제와 여당이 주도하는 저축은행 구제법을 서로 통과시켜 주는 ‘빅딜’이 제안되면서 구제법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한때 커졌으나 이후 민주통합당이 론스타 관련 감사 청구를 새로 요구하면서 협상은 일단 결렬됐다. 하지만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 언제든지 되살아날 가능성이 있다.

류시훈/서보미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