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특히 연인을 위한 로맨틱코미디나 블록버스터, 가족 관객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점령한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가기에는 더욱 쓸쓸한 계절이다.

연말·연초를 혼자 보내야 한다면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나 로맨스·액션 장르를 벗어나 저예산·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작은 영화관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올해는 혼자 봐도 재미있는 예술영화가 많이 개봉했다.

◇긍정·희망의 기운..'르 아브르' '…기적' = 핀란드의 거장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르 아브르'와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예술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대부분의 관객이 즐겁게 볼만한 영화다.

동화 같은 이야기에 긍정과 희망의 기운이 넘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밝은 얘기를 하는 것만은 아니다.

'르 아브르'는 유럽의 고질적인 사회문제인 불법 이민자 문제를 비롯해 가난한 사람들이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프랑스 작은 항구도시에 숨어들어온 아프리카 소년을 가난한 노인과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도와주는 과정이 큰 감동을 준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역시 활화산 주변에서 화산을 맞고 사는 도시의 가난한 아이들이 소원(기적)을 이루려고 애쓰는 이야기를 담았다.

실제로 기적은 일어나지 않지만, 그것을 향해 다가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졌다.

두 영화 모두 경쾌한 리듬으로 전개되고 결말도 긍정적이어서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독특한 화법 눈길..'내가 사는 피부' '메리와 맥스' = 조금 독특한 분위기의 영화를 만나고 싶다면 '내가 사는 피부'와 '메리와 맥스'를 추천한다.

오는 29일 개봉되는 '내가 사는 피부'는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최신작이다.

인간의 욕망과 복수심이란 뜨거운 주제를 냉정한 화법으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권위 있는 성형외과 의사가 사고로 아내를 잃고 딸까지 불운하게 떠나보내면서 광기로 똘똘 뭉쳐 인공피부를 실험하는 내용을 담았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인물들의 숨겨진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는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어 반전을 보게 되는 재미가 크다.

'메리와 맥스'는 어른을 위한 클레이 애니메이션이다.

처절한 외로움에 시달리는 두 사람 '메리'와 '맥스'가 지구 반대편인 호주와 미국에 살면서 펜팔 친구가 되고 진실한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를 담았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라 다소 괴기스러운 캐릭터를 만나게 되지만, 비슷한 외로움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 관객이라면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는 영화다.

◇슬프지만 긴 여운..'래빗 홀' '자전거 탄 소년' = 슬픈 이야기지만, 긴 여운을 남기며 카타르시스를 주는 영화들도 있다.

니콜 키드먼, 아론 에크하트 주연 '래빗 홀'은 아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담은 영화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지만, 내면에서 일렁이는 캐릭터들의 격한 감정을 꾹꾹 눌러 평범한 일상 속에 조용히 그려냈다.

편하게 보기는 어렵지만, 결말에는 한 움큼의 온기와 삶에 대한 긍정을 담아 보는 이의 마음을 달래준다.

내년 1월 개봉되는 '자전거 탄 소년' 역시 슬픈 영화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한 소년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파하다 위탁모를 만나 조금씩 치유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괴로워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그래도 끝까지 아이를 품어주는 위탁모의 진실한 마음과 그로 인해 조금씩 치유되고 성숙해지는 아이의 모습에서 희망을 보게 된다.

◇한국 독립 다큐 '잼 다큐 강정' '오래된 인력거' = 한국 감독들이 만든 독립 다큐멘터리 두 편도 눈길을 끈다.

'잼(Jam) 다큐 강정'은 독립영화 감독 8명이 제주 강정마을 이야기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담은 다큐멘터리다.

정부가 이곳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에 맞서 마을 주민들과 평화·환경운동가들이 싸우는 모습을 다양한 형식으로 담아냈다.

제주 강정마을을 둘러싼 구체적인 내용을 접할 수 있는 기록물이다.

'오래된 인력거'는 이성규 감독이 10여 년간 인도 캘커타에 머물며 인력거꾼 '살림'을 관찰한 기록물이다.

400만 극빈자가 살아가는 인도 캘커타에서 작은 꿈을 품고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이 울림을 준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mi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