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시위는 선동가와 모험주의자들의 소행"…강경 대처 시사
주지사 직선제 부활, 정당 등록 간소화 등 정치 개혁안도 내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22일(현시시간) 대(對) 의회 연례 연설에서 불법 시위 강경 대처 방침과 주지사 직접 선거 부활 등을 포함한 정치 개혁 방안을 동시에 밝히는 '채찍과 당근' 정책을 선보였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대통령 임기 중 네번째이자 마지막인 대 의회 연설에서 지난 4일 총선으로 새로 선출된 제6대 하원 의원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현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 발표로 들어갔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최근 총선 부정을 규탄하는 야권의 대규모 항의 시위와 관련 "국가 지도부는 다른 견해를 존중하고 민주주의 원칙에 기초하면서도 선동가와 모험주의자들이 러시아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엔 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지 혼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힐 권리는 보장돼 있지만 러시아 국민을 조종하고 그들을 현혹하며 사회적 반목을 조장하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15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국민과의 대화'에서 최근의 시위 사태가 러시아를 혼란에 빠트리려는 외국의 사주를 받은 국내 일부 야권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것이라고 비난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발언으로 불법 시위에 강경대처할 것임을 시사한 발언이었다.

그러면서 일련의 정치 제도 개혁을 약속하는 '당근정책'도 내놓았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먼저 지난 2004년 푸틴 당시 대통령에 의해 폐지된 주지사 등 지방 정부 수장 직선제를 부활할 것을 제안했다.

메드베데프는 "지방 정부 수장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돼야 한다"며 이같이 제안했다.

현재 주지사 등 지방 정부 수장은 해당 지역 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연방 대통령에게 3명 이상의 복수 후보를 추천하면 그 가운데 대통령이 1명을 임명하고 이를 지역 의회에서 추인하는 방식으로 선출된다.

지방에 대한 중앙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취해진 지방 정부 수장 대통령 임명제가 주민 직선제를 강조하는 현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또 정당 등록 절차도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 연방을 구성하는 주체(83개 지역)의 절반 이상 지역에 지부를 두고 4만 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토록 한 현행 정당 등록 규정을 간소화해, 러시아 전체 과반수 지역 출신 대표 500명의 신청으로 정당을 등록하도록 하자"고 발의했다.

대통령은 이어 선거법과 관련, 현재 지역 의회 및 연방 하원 선거에서 후보들이 150만 명 이상의 추천인 서명을 받도록 한 규정을 폐지할 것을 제안했다.

또 대통령 선거 후보의 경우 현재 무소속 출마자나 원외 정당 후보의 경우 200만 명의 추천인 서명을 받게 돼 있는 것을 무소속 후보의 경우 30만명, 원외 정당 후보의 경우 10만명의 추천인 서명만 받으면 후보 등록을 허용하도록 관련 법률을 바꿀 것을 제안했다.

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정치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취지였다.

대통령의 의회 연설 관행은 초대 러시아 대통령인 보리스 옐친 때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날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정치 개혁 약속에 대해 최대 야당인 공산당 당수 겐나디 쥬가노프는 "푸틴 그룹이 이런 개혁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실현 가능성을 일축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