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고객 감동 방송광고] SK텔레콤 "똑같은 가능성을 위해 …"
올해 우리나이 72세의 할리우드 명배우 알 파치노는 명성만큼 상복은 없던 걸로 알려져 있다. 40년이 넘는 커리어 동안 아카데미상을 단 한 번밖에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1993년 수상하게 된 단 하나의 아카데미상도 그 이전 무려 7번이나 후보로 지명됐다 고배를 마신 뒤 얻어낸 것이었다. 그야말로 7전8기다. 그 8번째 후보 지명이자 유일한 수상작이 바로 ‘여인의 향기’다.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는 퇴역 후 시각장애인이 된 육군대령 프랭크 슬레이드 역을 맡았다. 비록 앞은 보이지 않지만 남성적 매력으로 젊은 여성을 유혹해 함께 탱고를 추는 장면은 영화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명장면으로 꼽힌다. 그런데 ‘여인의 향기’가 막 미국에서 개봉됐을 즈음 어느 기자는 알 파치노에게 “이 영화에서 당신의 연기를 보고서야 비로소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됐습니다”고 했다.

그러자 알 파치노는 “그럴 리가 없죠.내 연기를 보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시각장애인의 삶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겁니다. 정 알고 싶으면 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들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감고 소리만 들어보세요. 그게 바로 시각장애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고 응수했다.

최근 바로 이 같은 발상에서 시작된 광고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SK텔레콤 ‘가능성을 만나다’ 기업PR 캠페인 시리즈 중 하나인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 편이다. 광고는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파란 하늘을 떠도는 연들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러면서 푸른 초원에서 이어폰을 꼽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한 소녀의 모습이 비쳐진다.그 자체만으론 어떤 자막과 내레이션 내용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기 힘든 흐름이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여전히 눈을 감고 이어폰을 낀 채 커다란 개와 함께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의 모습 아래로 ‘시각장애인 김진선 씨’란 자막이 등장한다. 그리고 ‘모두의 똑같은 가능성을 위해 시작합니다’라는 자막과 내레이션이 시작된다.

그러고는 휴대폰과 이어폰 그림 이미지 위로 “휴대폰 속 ‘귀로 듣는 도서관’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도서 애플리케이션”,그리고 “가능성을 만나다 SK텔레콤”이라는 자막과 내레이션이 이어지며 광고가 끝난다.

[2011 고객 감동 방송광고] SK텔레콤 "똑같은 가능성을 위해 …"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 편의 핵심은 사실상 광고의 결말부분이 아니라 중간 부분에 놓여있다. 알 파치노의 응수처럼,이 광고를 보고 있는 시청자 본인들에게 시각장애인의 삶의 방식에 대해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바로 이 광고를 ‘보고 있고’, 자막을 ‘읽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광고 속 김진선 씨와 시청자들의 삶의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요구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요구란 무엇일까.내레이션과 자막, 그리고 그림 이미지가 알려준다.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도서 애플리케이션. 보고 읽는 ‘당연한’ 행위에 대한 시청자들의 인식을 전환시킨 뒤, 보고 읽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이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소개한다는 순서다. 그러고는 앞서 제시된 ‘가능성’이란 단어가 끄트머리에 다시 한 번 언급된다. 결국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식 접근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같은 가능성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들이란 선언이다.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 편은 전체적으로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콤팩트한 구성으로 강렬하면서도 간명하게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접근의 변환을 이루고 있다. 결국 광고가 전달해야 할 기술적 진보에의 예찬도 놓치지 않았다. 전반적 주제의식도 단순하고 명확하게 전달된다. 대단히 성공적인 광고다.

지금 우리는 시청각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워낙 많은 메시지와 감성이 시청각이란 ‘당연한’ 바탕을 토대로 전달된다. 어쩌면 이런 때일수록 시청각에 대한 인식 전환 그 자체가 광고제작의 아이디어로서 부각될 필요가 있을 법하다. SK텔레콤 ‘행복을 들려주는 도서관’ 편이 보여주듯, 그런 광고들을 통해 대중은 단순히 기업홍보 메시지만 전달받는 게 아니라 ‘당연한 사고’ 그 자체가 무너지는 쾌감도 동시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즐거움은 광고가 전달해주는 묵직한 메시지만큼이나 귀중한 경험이 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