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3.0' 시대…제약사·병원 경계가 허물어진다
보건 환경이 개선되고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길어졌다. 하지만 질병이나 부상으로 고통받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기간을 뜻하는 ‘건강수명’은 아직 선진국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2009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0세였지만, 건강수명은 71세에 불과했다. 10년 가까운 시간을 각종 질환에 시달리면서 신체적·경제적으로 힘들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에서 의료비 부담을 줄이며 ‘건강하게 사는 것’으로 옮겨가고 있다. 전염병 퇴치에 중점을 두던 20세기 초가 헬스케어 1.0시대였고 질병치료를 통해 기대수명을 연장시킨 20세기 말이 2.0시대였다면, 예방과 관리를 통해 건강수명을 늘리는 21세기는 ‘헬스케어 3.0시대’라고 할 수 있다.

헬스케어 3.0시대는 제약 의료기기 의료서비스 등 관련 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제약산업은 줄기세포와 유전자 치료법 등이 상용화되면서 ‘니치버스터(niche buster)’, 즉 개인별·질환별로 특화된 치료제가 시장의 주류를 형성할 것이다.

유전자 치료가 활성화되면 제약산업과 의료서비스 산업 간의 결합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은 제약회사는 약품을 생산하고 병원은 약품을 처방·사용하는 구조로 이원화돼 있다. 그러나 유전자 치료를 위해서는 병원이 세포 및 유전자의 검사부터 채취, 배양, 시술에 이르는 전 과정을 수행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제약회사와 병원 간의 협력이 강화되고, 다양한 사업 모델이 등장할 전망이다.

의료기기 산업에서는 정보기술(IT)이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극미세량의 생체물질을 검출하는 첨단 분석기기와 자동진단기 등 디지털 의료기기는 IT 융·복합의 결과물이다. 앞으로는 기술 혁신에 기반한 의료기기용 IT 전문 기업이 등장하고, 반도체나 가전제품을 만들던 기존 IT 기업들도 의료기기 산업에 진출할 전망이다. 이미 인텔과 도시바 등은 혈압측정기 등의 신제품을 개발하고 전략적 제휴를 통해 의료기기 산업에 뛰어들었다.

의료서비스 산업은 환자의 만족도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전망이다. 병원이 아닌 가정에서 진단과 진료가 가능해지고, 환자와 의사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소통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인터넷 사용자의 88%는 인터넷으로 건강정보를 얻고 있으며, 특정 질환자들을 중심으로 소셜네트워크를 형성해 제약사에 치료제 개발을 요구하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다.

헬스케어 3.0 시대는 정부의 보건정책도 달라질 것을 요구한다. 정부는 건강수명 연장을 정책의 목표로 설정하고 예방 및 진단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질병 예방 차원에서 비만인구를 줄이고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노력도 필수적이다.제약 및 의료기기 기업은 희귀질환용 신약과 첨단 의료기기 개발을 위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맞춰 헬스케어 분야의 새로운 수요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다. 병원은 예방·관리에 중점을 둔 비(非)진료 영역을 개척하고, 기존의 병상 확대 전략에서 벗어나 질환별로 특화한 전문 병원으로 발전하기 위한 길을 찾아야 한다.

최진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cjybike@s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