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화 한국타이어 부회장 "불황 닥쳐도 충분히 극복…내년에도 속도조절보다 공격 투자"
서울 역삼동 한국타이어 본사 17층의 서승화 부회장(63·사진) 집무실. 5평 남짓한 응접실에는 꽃병과 액자 대신 타이어 모형이 소박하게 놓여 있다. 서 부회장은 낡은 테이블과 소파를 가리키며 “1993년 처음 사옥을 지을 때 들여왔던 가구가 아직 그대로다”며 “인테리어를 바꾸자는 얘기도 없진 않지만 회사 문화가 겉으로 꾸미고 포장하는 것을 싫어해 아직도 그때 것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겉치레를 싫어하는 회사 분위기처럼 한국타이어는 소리소문 없이 내실 성장을 이뤄왔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매출은 연평균 13.9% 증가했다. 세계 2위 타이어 업체인 미쉐린의 장 도미니크 세나르 대표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는 기업’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서 부회장이 털어놓는 내년도 경영 전략은 여전히 ‘성장’이다. 그는 “내년 전 세계 경기가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있지만 성장정책을 고수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유럽 공장 확대와 신흥시장 신규 공장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경제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많은데, 내년 경영 전략은….

“2007년 제가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을 때 한국타이어는 전 세계 시장에서 3조3858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올해는 매출 6조원을 돌파했습니다.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죠.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13%의 성장률로 글로벌 매출 목표인 6조600억원을 상회하는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글로벌 위기였던 2008년에는 매출이 18% 늘어 증가율이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고가의 타이어를 쓰던 소비자들이 품질이 좋고 저렴한 타이어를 찾으면서 경제위기 때 오히려 실적이 좋았어요. 신차용 타이어시장이 침체되면 교체용 타이어 수요가 받쳐주기 때문에 타이어 산업은 불황에도 충분히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내년에도 경기가 불투명하지만 꾸준히 투자를 늘려서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가는 전략을 쓸 겁니다. 내년에도 올해보다 10% 이상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공격적인 매출 목표를 세울 계획입니다.”

▶최근 경쟁사들이 글로벌 시장에 대규모 공장을 잇따라 세우고 있습니다. 헝가리, 금산공장 외에 추가로 공장을 확충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2013년 말 중국 충칭공장과 인도네시아 베카시공장이 문을 열면 연간 1억개의 타이어를 생산하게 됩니다. 충칭공장은 2015년 1200만개의 트럭 타이어를, 인도네시아 공장은 600만개를 각각 생산하게 돼요. 하지만 수요를 맞추기엔 아직 역부족입니다. 타이어산업의 성장률을 고려해 지금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려면 매년 공장을 한 개씩 지어야 할 정도입니다. 우선 중국과 인도네시아 공장이 제대로 생산능력을 발휘하도록 본궤도에 올려놓은 뒤 다른 지역에 공장 건립을 검토할 계획입니다. 현재 가동 중인 헝가리 공장을 증설할 수도 있고, 남미 등 신흥시장에 신규공장 설립도 고려할 수 있고요.”

▶국내 초고성능(UHP) 타이어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초고성능 타이어시장의 향후 전망은 어떻습니까.

“초고성능 타이어 매출은 2008년부터 3년간 60%가량 증가했습니다. 국내 50%, 중국 130% 증가할 정도로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고부가가치 상품인 초고성능 타이어의 비중을 늘릴 계획입니다. 또 타이어의 극한성능을 보여줄 수 있는 시험 무대인 모터 스포츠에 꾸준히 참여해 기술력을 향상시키고 세계에 한국타이어의 품질을 알릴 겁니다.”

▶초고성능 타이어 외에 성장동력으로 추진 중인 것은 무엇입니까.

“친환경 타이어시장 개척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2009년 2년6개월간 110억원을 투자해 저연비 친환경 타이어 ‘앙프랑(enfren)’을 출시했는데, 내년 1월에는 후속상품 ‘앙프랑 에코’를 출시할 예정입니다. 이 타이어를 장착하면 같은 거리를 보다 적은 연료로 주행할 수 있습니다. 현재 회전저항을 낮추면서 차체의 조정 안정성을 좌우하는 그립을 개선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회전저항과 그립은 어느 한쪽을 개선시키면 다른 쪽의 성능이 떨어지게 돼 있는데, 두 가지를 모두 갖춘 타이어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죠. 앞으로 판매량보다 안전과 친환경에 중점을 두고 에너지 소비효율이 우수한 타이어를 출시할 계획입니다.”

▶저가 타이어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할 계획도 있습니까.

“‘한국(Hankook)’이라는 브랜드는 이미 세계 시장에서 고품질 타이어로 자리잡았어요. 생산량이 확대되고 신흥국에 중·저가 제품을 공급하게 되는 2013년 쯤 ‘오로라’와 같은 하위 브랜드를 활용해 다양한 수요에 대응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한국타이어는 기본 뼈대로 유지할 겁니다. 2004년 기업이미지(CI)를 변경할 때 해외 시장을 고려해 브랜드 이름을 바꾸려고 했는데 시장조사 결과 ‘한국’이라는 이름이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외국인들은 발음이 독특하고 개성있다고 좋아하더군요. ‘한국’을 대표 프리미엄 브랜드로 내세우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타이어 외에 다른 산업에 진출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한국타이어는 한마디로 ‘정직한 회사’입니다.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기보다 타이어 분야만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타이어는 다른 상품과 달리 사람의 생명을 좌우합니다. 안전한 타이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비자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분야에 사업을 확장하기보다 잘 알고, 잘하는 분야에 집중할 겁니다. 앞으로도 타이어 전문업체로서 외길을 걷겠습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