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염 代父' 박종근 회장 사재 100억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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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섬유 장학재단 설립…"한국 섬유 이끌 젊은피 양성"
국내 섬유업계 최초 장학재단이 탄생했다. ‘재단법인 한영’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 날염(천에 무늬를 염색하는 것)업계의 아버지로 불리는 박종근 한영나염 회장(74)이 섬유산업의 앞날을 위해 사재 100억원을 내놓았다.
박 회장의 어린 시절은 고난 자체였다. 9남매 중 둘째인 그는 12세 때부터 울산에서 아버지를 따라 대현장, 덕화장 등 5일장을 누비며 낫과 호미를 팔아 가족을 부양하는 일을 도왔다. 장이 서지 않는 날에는 개똥과 소똥을 줍고 풀을 베는 게 일상이었다.
공부는 꿈도 못 꿨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14세에 혈혈단신 부산으로 떠났다. 밥그릇을 줄이기 위해서다. 60여년간 이어진 날염과의 질긴 인연은 이때 맺었다. “날염업체(삼미문열)를 찾아가 일을 시켜 달라고 했어요. 어린 신참이라 온갖 잡일과 구박이 서러울 때도 많았지만 ‘넌 객지에서 성공할 팔자야’라는 할머니 말씀을 되새기며 견뎌냈죠.”
날염 기술을 몸에 익힌 박 회장은 22세에 상경했다. 색을 만드는 ‘조색’ 기술에 소질이 있다고 자부한 그는 날염업체에 취직해 종잣돈을 모아 1959년(24세) 지금의 한영나염을 인수, 사업가로 변신했다.
처음에는 승승장구했다. 1960~1970년대는 섬유산업이 욱일승천할 때였다. 1978년엔 대통령이 공장을 방문했고 ‘수출의날’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한영나염은 미아리에서 구로로 본사를 확장, 이전한 후 반월공단에도 공장을 세웠다. 그러나 전성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중국과 태국 등 신흥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와 프랑스 등 선진국의 프리미엄 제품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했다”고 기억했다.
박 회장이 장학재단을 설립하기로 마음 먹은 것도 이때다. 그는 “인재를 육성하고 연구·개발(R&D)을 지원해 섬유산업을 세계화하지 않고서는 날염업계가 살아남을 수 없다”며 “20년 넘게 키워온 꿈을 이제야 실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재단에서 후원할 젊은 피를 발굴하기 위해 지난 10월14~17일 ‘제1회 재단법인 한영 텍스타일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했다. 8일 서울 대치동 섬유센터에서 열린 장학금 수여식에서 666명에게 상금 5740만원을 수여했다. 또 전국 25곳 대학 섬유학과 대학생 50명에게 1인당 200만원씩 총 1억원의 장학금을 제공했다. “해외 유학생들도 출품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재료값이라도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수상자가 좀 많아졌죠. 외국 젊은이들도 참여할 수 있게 점차 공모전을 확대할 것입니다.”
박 회장은 가업을 이어 받은 큰아들 박현섭 한영나염 대표(49)와 함께 한국 섬유산업의 르네상스를 이뤄낸다는 구상이다. 그는 “세계화를 지원하는 것은 제 힘이고 달성하는 건 아들 몫”이라며 “한국 섬유가 세계를 호령하도록 인재를 양성하는 데 여생을 바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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