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세개편ㆍ자본이득 과세 모두 부작용 만만찮다"
"금융시장 대혼란…세수확보 달성도 의문"

정치권에서 이른바 '버핏세'로 촉발된 부자 증세 논쟁이 세제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국민 복지 확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려면 세수 확대가 필요하다는 데 여야 정치권 모두 공감하고 있어 대대적인 세제 개편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금까지 거론된 주요 세제 개혁안의 골자는 소득세 최고구간을 신설하고 자본이득 과세를 강화함으로써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징수한다는 것이다.

곳곳에 구멍이 뚫린 비과세ㆍ감면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백가쟁명식으로 터져 나오는 부자 증세 방안에 정부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새로운 제도를 서둘러 도입했을 때 부작용이 만만찮은데다 원하는 규모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세제 전반으로 번지는 부자증세 논란
부자 증세는 미국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 자본소득의 미흡한 과세를 지적한 이후 버핏세란 이름으로 국내에 상륙했다.

한나라당에서 소득세율 최고구간을 신설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최고구간 신설안은 지난해 민주노동당에서 의원입법 형태로 1억2천만원 초과구간을 만들어 40%의 세율을 매기자고 요구했을 때만 해도 힘을 받지 못했다.

지난달 한나라당이 버핏세를 계기로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공론화 단계에 들어섰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버핏세 검토를 주장했고, 김성식 의원은 "1억5천만원이든 2억원이든 최고 구간을 더 만들어 세율을 38~40%로 올려야 한다"며 논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홍준대 대표가 이에 가세해 지난달 28일 청와대에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나라당 내 쇄신그룹인 민본21도 과세표준 1억5천만원 또는 2억원 초과 구간을 새로 만들어 세율을 40%로 하자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행보는 상대적으로 덜 활발해 보인다.

민주당 경제민주화특위가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 신설 등을 포함한 10대 핵심정책을 발표했으나 정동영 최고위원 등 일부 의원을 제외하면 적극적인 움직임은 없다.

부자증세 요구가 여당을 중심으로 거센 것은 지난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한 이후 본격화됐다.

내년 총선과 대선 등 정치일정을 고려한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복지 재원 확충이란 정책 목표와 관련 있어 보인다.

부자들의 세금 부담을 높이려는 한나라당의 보폭은 더 넓어졌다.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증세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자본이득에 과세하는 방안까지 거론한 것이다.

현재 대주주의 주식 양도차익에 한정된 과세 범위를 넓히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다만, 부작용을 고려해 개인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움직임에 대한 박근혜 전 대표의 견해는 매우 다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1일 연합뉴스ㆍ뉴스Y와 인터뷰에서 부자증세에 대해 "종합적인 세제 검토 이후 판단해야 한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부자 증세 대신에 비과세 감면, 일몰제 등을 손질해 세금 걷기에 실효성을 높이는 데에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5일 정책의총을 열어 부자 증세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부자증세 공방이 세제 전반으로 확산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백가쟁명 부자증세'에 정부는 부정적 태도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 취지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자는 것이다.

현행 제도가 마련된 지 오래됐고 최고 구간의 시작점이 낮다는 게 개편 이유다.

김성식 의원에 따르면 지금과 같이 네 구간 체제로 개편됐던 1996년에는 최고구간(8천만원 초과) 대상자가 1만명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최고구간(8천800만원 초과) 해당자가 무려 28만명으로 급증했다.

최고구간 기준이 고소득자를 가려내는 잣대로 활용하기에는 실효성을 잃었다는 게 김 의원의 판단이다.

최고세율인 35%도 높은 편이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5.4%)보다 낮고, 전체 34개 회원국 중 19번째다.

이는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이 최고구간을 1억2천원, 1억5천만원, 2억원 등으로 높이고 세율 역시 38%, 40%, 42% 등으로 올리자고 주장하는 근거다.

지난해 발의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안(1억2천만원 초과, 세율 40%)이 실현되면 소득세는 2012년에 1조6천40억원 더 걷힐 것으로 추정된다.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소득세 개편안에 정부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올해 세법개정안에서 정치권의 요구로 소득세 감세를 철회한 마당에 증세까지 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현재도 고소득자의 세 부담이 큰데 이들에게 짐을 더 얹기 어렵다는 점도 반대 논리다.

2009년 귀속분 근로소득세 부담 분포를 보면 상위 소득자 17.9%가 전체 결정세수의 92.3%를 부담한다.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이 40%에 달해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결국,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은 면세점을 높이거나 소득공제 등의 혜택을 줄여 더 많은 이들이 세금을 내는 구조로 바꾸는 문제와 연결된다.

그러나 이는 서민의 부담을 늘리게 돼 조세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롭게 부상하는 자본이득 과세는 버핏세의 본래 목적에 맞은 측면이 크다.

버핏세는 애초 워런 버핏이 자신과 같은 초고소득자가 자신의 비서보다 저율의 세금을 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 데에서 비롯됐다.

버핏의 소득 대부분이 금융소득인데 미국에서는 금융소득 세율이 근로소득보다 낮아 생긴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자본이득인 주식양도차익에는 과세하지 않고 있다.

1991년에 비상장 주식의 양도차익에 과세하기 시작했고, 1999년부터는 대주주의 보유 주식에 세금을 매겼다.

양도차익에 전면적인 과세를 하지 않되 증권거래세로 유가증권시장엔 0.15%, 코스닥시장엔 0.3%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 역시 국제 기준과 거리가 멀다.

미국이 1913년부터 주식양도 차익에 과세했고 OECD 회원국 대부분이 자본이득에 세금을 걷는다.

과거엔 금융산업 발전과 주식시장의 육성을 위해 주식양도 차익에 비과세했지만 이제는 국내 주식시장이 성숙한 만큼 비과세 명목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정치권 일각의 주장이다.

한나라당 임해규 정책위 부의장은 현재 상장주식 양도차익의 과세 대상인 '대주주'를 '주식 부자'들로 넓히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정희 대표는 거의 모든 상장주식의 양도차익에 과세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이 대표의 안은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증권의 양도차익을 과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세율은 종합소득세율을 적용해 산출하도록 했다.

현물뿐 아니라 파생상품의 양도차익에도 같은 세율을 적용한다.

단, 1년간 양도차손과 양도차익을 합산해 과세한다.

정부는 "자본이득 과세는 중장기적으로 봐야 할 문제다"며 정치권 움직임에 난감해 한다.

국내 주식시장 비중이 30%에 달하는 외국인들이 새 제도가 도입되면 주식을 무더기로 매각하면서 금융시장이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지금은 주식거래로 수익이 생기는 것과 관계없이 무조건 거래세를 부과하는데 자본이득세는 이득을 보는 한도에서 세금을 매기는 만큼 세수가 더 늘어날지도 의문이라는 점도 반대 논리다.

(서울연합뉴스) 최현석 구정모 기자 harrison@yna.co.krpseudoj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