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발ㆍ이탈ㆍ연기…갈수록 꼬이는 '알뜰 주유소'
정부가 기름값 인하 대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알뜰주유소’가 갈수록 꼬이고 있다. 기름을 공급할 정유사를 정하는 2차 입찰이 미뤄지고 있는 가운데 기존 주유소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한진우 한국주유소협회 회장과 정유사 별 자영주유소 협의회 대표들은 28일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회사 본사를 방문해 알뜰주유소 출범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주유소협의회 측은 정부가 알뜰주유소를 강행하면 폴 사인(상표표시 간판)을 떼거나 휴업하는 등 극단적인 대응도 불사할 계획이다.

한 회장은 “시장 가격보다 100원 싼 알뜰 주유소가 출범하면 일반 주유소들은 다 죽는다”며 “최후의 수단으로 각 주유소 폴 사인을 떼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경고했다”고 말했다. 김종배 SK에너지 자영주유소 협의회 대표는 “정유 4사 영업 실무진들을 직접 만나 우리의 입장과 의사를 전했다”며 “알뜰주유소 기름 공급에 참여할 경우 동맹휴업과 같은 강력 대응을 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존 브랜드 주유소들의 반발뿐 아니라 알뜰주유소로 전환하겠다고 한 주유소들도 재입찰이 차질을 빚으면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알뜰주유소로 전환하기로 한 영동고속도로 횡성주유소 관계자는 “50, 60원 정도 싸게 팔면 마진은 줄어도 손님을 많이 끌 수 있을 것 같아 참여를 결정했다”면서도 “간판이나 인테리어, 카드 단말기까지 모든 걸 바꿔야 하는데 입찰이 늦어져 연말까지 전환이 가능할지 알 수 없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지식경제부는 농협이 직영하는 NH주유소 300여 곳과 기존 정유사와 계약해 운영하고 있는 200여 곳의 농협주유소, 상표 표시가 없는 무폴주유소 50여 곳, 고속도로 주유소 50여 곳을 우선 알뜰주유소로 만들 생각이다. 이후 남은 600여 곳의 무폴주유소, 100여 곳의 고속도로 휴게소 주유소 등으로 확대해 2015년까지 1300개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참여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라고 밝힌 경부고속도로 평사주유소 관계자는 “원래 이달 초까지 참여 여부를 결정하라고 했는데 참여업체가 적어서 그런지 제출 기한이 이달 말로 연장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물량을 정하지 않고 공급가격만 정하는 단가계약인 알뜰 주유소 입찰을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공급 물량을 정해두지 않고 일정 기간을 특정 가격으로 받는 만큼 정부도 알뜰주유소 확대에 자신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알뜰주유소 공급물량이 국내 전체 수요의 4~5%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대로라면 훨씬 못 미칠 것”이라며 “가격 인하 정도와 효과를 보고 참여하려는 주유소들이 많을 텐데 시작부터 이렇다면 누가 나서겠냐”고 반문했다.

기름값이 비싼 서울에서 알뜰주유소 확대가 불투명해 인하 효과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시내 농협주유소는 양재동 한 곳뿐이다. 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얻는 서울지역 무폴 주유소들의 전환도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 한 주유소 관계자는 “저가로 공급받으면 그만큼 싸게 팔아야 하는데 공급 과잉으로 포화 상태인 요즘 고객수로 그만큼 메우기도 어려울 것”이라며 “할인폭이 50, 60원 정도라면 신용카드 연계 할인으로도 가능해 위험 부담을 안고 전환을 결정할 만큼의 매력은 없다”고 말했다.

윤정현/김동욱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