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한 여성이 저토록 많은 기회를 얻은 비결은 뭘까. '힐러리의 삶'은 이런 물음에 답한다. 저자는 워터 게이트 사건 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칼 번스타인.그는 언론인답게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딸이 영부인을 거쳐 상원의원으로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할 때까지의 과정을 고스란히 추적했다.

책에 따르면 힐러리 로댐 클린턴(64)의 삶은 결코 행복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부모의 사이는 좋지 않았고,아버지 휴 로댐은 인색한 데다 칭찬이라곤 모르는 독단적 인물이었다. 아이들이 치약 뚜껑을 열어두면 창 밖으로 내던지곤 주워오게 했다. 아무리 좋은 성적을 받아도 칭찬은커녕 더 잘하지 못했다며 나무랐다.

다행히 어머니 도로시는 온화하고 신중했다. 그는 남편의 학대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계발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열정과 관심을 쏟을 만한 것을 찾아냈다. 힐러리에게도 삶에서 주연이 되려면 큰 소리로 의견을 말하고,망설임 없이 목표를 추구하라고 일렀다. 무엇보다 혼란 속에서 평정을 유지하는 법을 가르쳤다.

무서운 아버지와 대찬 어머니 사이에서 힐러리는 일찍부터 정치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 웰슬리대 입학 후 한때 의기소침한 적도 있었지만 곧 극복하고 학생회장으로 뽑혔다. 예일대 로스쿨에서는 '법률과 사회적 행동에 대한 예일리뷰'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빌 클린턴도 만났다. 빌은 끊임없는 외도로 힐러리를 괴롭혔다.

1988년 이혼녀 마릴린 조 젠킨스와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빌은 이혼하고 싶어했지만 힐러리는 거부했고 훗날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어떤 결혼도 완벽할 순 없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게 해결책은 아니다. 내게도 이혼이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며 혀를 깨물고 견뎌야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

힐러리는 또 아칸소에선 변호사 시험엔 합격했지만 워싱턴에선 떨어졌다. 817명 중 551명이 합격한 시험이었다. 그는 이 일을 오랫동안 숨겼다. 아칸소 최대 로펌 로즈에서 일할 땐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 주위의 험담에 시달렸다. 주로 외모나 차림에 관한 것으로 감각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는 상대가 누구든 당당했고 위협당하는 법이 없었다.

백악관을 떠나기 전 상원의원에 출마한 그는 유권자들의 희망사항은 물론 감정을 상하게 할 일까지 미리 조사하고 확인하는,이른바'듣는 유세'를 택했다. 상원의원이 된 뒤엔 백악관 시절 탄핵 결정에 표를 던졌던 의원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힐러리의 대선 출마는 버락 오바마에게 밀려 좌절됐지만 그는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맡았다.

759쪽이란 방대한 양 끝에 번스타인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힐러리는 고정관념이나 장애물에 위협받거나 억압당하지 않았다. 위기에서 그녀를 받쳐준 기둥은 신앙,봉사와 그것에서 느낀 자존감,내밀한 삶에 대한 간절한 욕망이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