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책 찾아낸 '직지 代母' 박병선 박사 타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들을 반환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재불 서지학자 박병선 박사가 23일(한국시간) 새벽 프랑스 파리에서 타계했다. 향년 83세.

지난 8월 파리에서 직장암이 재발해 수술을 받은 박 박사는 파리시내 15구 쟝 가르니에 병원에서 요양하던 중 22일 오후 10시40분(한국시간 23일 오전 6시40분)께 별세했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은 파리 한국문화원에 빈소를 마련하고,조카 등 유족들과 장례 절차를 논의할 방침이다. 천주교 신자인 고인은 결혼을 하지 않아 직계가족이 없다.

정부는 고인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고인이 국가와 사회에 공헌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유족의 뜻을 들어 국립묘지 안장을 추진하기로 하고,국가보훈처에 심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화부는 또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로비에 빈소를 마련하기로 했다.

박 박사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을 평생 실천으로 옮긴 사학자다. 1967년부터 1980년까지 13년간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에서 사서로 근무한 박 박사는 1972년 동서관에 보관돼 있던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처음 발견했다.

1979년에는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 297권을 최초로 발견,존재를 세상에 알리면서 반환 운동에 불을 지폈다. 특히 직지심체요절이 1455년판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빠른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도 증명하고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산파 역할을 해 '직지 대모(代母)'란 별명도 얻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국민훈장 동백장,지난 9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수녀를 꿈꾸던 박 박사는 진명여고와 서울대 사범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뒤 1955년 우리나라 여성유학비자 1호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 파리제7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받은 뒤 1967년 BNF에 들어가 자비로 우리 문화재에 대한 실증 연구를 했다. 1919년 파리 강화회의 당시 김규식 선생 일행이 임시정부를 차리고 외교 활동을 했던 장소도 발견해 한 · 불수교 120주년인 2006년에 현판을 걸기도 했다.

지난해 1월 경기 수원에 있는 한 병원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았으며,지난 6월에는 외규장각 의궤 귀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박 박사는 파리에서 요양하며 2008년 출간한 《병인년,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의 속편을 준비해왔다. 그의 유해는 프랑스 현지 장례 절차를 마치고 국립묘지 안장이 확정되는 대로 국내에 돌아온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