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감기약 슈퍼 판매가 또 무산되고 말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정부가 제출한 약사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다루지 않기로 결정했다. 약물 오 · 남용 우려 등을 표면상의 이유로 들어 신중한 검토를 운운하며 내년 2월로 넘겨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구실일 뿐이고 전국적으로 6만명의 회원을 둔 약사회 압력에 굴복한 것임을 세상이 다 안다. 지금도 못하는 일을 총선과 대선이 예정된 내년에 가서 하겠다는 것이다.

슈퍼와 편의점에서 감기약 소화제 두통약 같은 가정상비약을 구입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민은 물론 의사들도 대부분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도 동일한 박카스를 약국에서 파는 것은 괜찮고 슈퍼나 편의점에서 팔면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은 억지다. 물론 약을 사기 쉬워지면 오 · 남용 우려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약에 대한 설명과 복용방법, 유통기한 관리 등을 보완토록 하면 된다. 더욱이 슈퍼 판매 허용으로 생긴다는 문제가 지금 약국에서도 그대로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초등학생이 혼자 가도 감기약을 두말 않고 내주고, 제대로 복약 지도를 하지 않는 약국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것을 국회만 모른다.

국회의원들이 직역단체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대가로 후원금과 표를 얻는 거래가 기업의 비즈니스처럼 일상화되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이런 일에는 어찌 그리도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지 신기할 정도다. 국민들이 정당에 염증을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당은 국익보다 당리가 먼저고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이익보다 자신의 표관리가 먼저다. 한국 정치는 이렇게 철저하게 썩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