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영국 탄소배출권 거래제 법안 통과를 주도한 팀 여(Tim Yeo) 영국 하원 에너지기후변화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주요 방안이긴 하지만 제도 도입에 앞서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그는 "한국에서 거래제 도입을 놓고 기업들이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고 유럽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쳤다"며 "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정부가 사전에 기업들과 충분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도 거래제를 도입할 당시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고 7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한 공감대를 얻은 게 아니다"고 말했다.
◆선제적 도입 후 부작용에 시달리는 EU

전 세계에서 의무적인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한 곳은 유럽연합(EU)과 뉴질랜드뿐이다. 문제는 오랜 논의를 거친 후 거래제를 도입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나가고 있는 EU마저도 여러 부작용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배출권 가격이 급격한 경기변동과 투기세력의 머니게임에 따라 급등락을 보이고 있어서다. 거래제를 도입한 2005년 이후 6개월여 동안 배출권 가격은 t당 8.57유로에서 무려 29.80유로까지 4배가량 폭등했다. 2007년 말엔 배출권이 남아돌면서 가격은 t당 0.3유로까지 떨어졌다. 국내 유화업체 고위 임원은 "경기변동과 투기자본에 대한 뚜렷한 방어책이 없는 상태에서 거래제를 도입하면 추가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U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다. 올 들어 유럽 철강업계는 추가적인 온실가스 감축 비용 때문에 다른 나라들보다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의견을 EU 의회와 각국 정부에 전달했다. 타타스틸은 시장 수요 감소와 온실가스 규제 비용 상승 등을 이유로 영국 스컨소프제철소의 가동 중단을 검토하겠다는 폭탄 발언까지 했다.

국제 분쟁도 벌어지고 있다. EU는 내년부터 탄소배출 허용량을 항공사에 배분하고 항공기 온실가스 배출 상한선을 초과하면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미국은 격분했다. 즉각 자국 항공사들에 EU의 법을 지키지 말라는 권고까지 내놨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26개 비유럽 회원국은 지난달 EU 조치에 반대 의견을 공식 제기했으며,중국항공운송협회는 EU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미 · 일도 거래제 도입 꺼리는데…"

세계 경제 대국인 미국과 일본 등에선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 논의가 사실상 중단됐다. 지난해 말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패배함에 따라 논의 자체가 자취를 감췄다.

교토의정서를 통해 국제사회 차원의 지구온난화 대책 마련을 주도해온 일본 역시 거래제 도입을 무기한 연기했다. 작년 말 각료회의에서 산업계 부담을 이유로 도입 방안을 아예 철회했다.

이와타 요시히토 일본 게이단렌 환경본부장은 "일본 기업들은 이미 환경자주행동계획에 따라 자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성과를 올리고 있어 거래제 도입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며 "특히 온실가스를 감축할 여지가 적은 나라가 거래제를 도입하는 것은 국민 생활과 고용,산업 경쟁력 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2017년 거래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은 내놨지만 지금은 시범사업 수준에서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역시 구자라트 마하쉬트라지역에서 시범 사업을 고려하는 단계다.

세계 주요 경쟁국가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선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거래제 도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67.5%는 거래제 도입 시기를 선진국 도입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응답했다. 산업계 역시 내년부터 온실가스 목표관리제를 도입한 상황에서 탄소배출권 거래제라는 이중 규제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기업들의 연간 손실이 최대 18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비용 부담 우려가 커서다.

대형 철강업체의 한 임원은 "거래제가 정말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제도라면 왜 선진국들이 앞다퉈 도입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선화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국 일본 등 주요국 탄소시장과 연계하지 않는 이상 시장참여자가 충분하지 않아 감축 비용 최소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며 "내년부터 목표관리제를 시행하면서 기초 인프라를 마련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고 다른 나라들의 도입 추이 등을 지켜본 뒤 우리나라에 적합한 정책이 무엇인지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창민/이유정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