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투자자들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채 투매에 들어갔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재정위기국 채권뿐 아니라 '트리플A' 등급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핀란드의 국채까지 내다 팔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 미국계 은행 트레이더의 말을 인용,"투자자들 대부분이 유로존 채권을 팔고 있다"며 "모두가 비상구를 향해 뛰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리플A' 국채 금리도 치솟아

FT는 15일 프랑스 국채와 독일 국채(분트)의 금리 차가 1.92%포인트,오스트리아 국채와 분트의 금리 차가 1.84%포인트로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이는 1999년 유로존 출범 이후 최대 격차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의 금리가 오르는 이유는 투자자들이 이들 채권을 앞다퉈 내다 팔고 있어서다. 분트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분트와의 금리 격차가 벌어졌다는 것은 해당 국가의 부도 위험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국가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프랑스가 2.33%포인트,오스트리아는 2.30%포인트까지 올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날 핀란드와 네덜란드 국채 금리도 각각 0.17%포인트,0.10%포인트 상승했다. 분트와의 금리 차는 각각 0.11%포인트,0.71%포인트로 벌어졌다. FT는 "유로존에서 국채 금리가 떨어지는 나라는 독일(연 1.77%)뿐"이라고 전했다.

트리플A 등급인 이들 나라의 국채가 투매 대상이 된 것은 유로존 위기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폴 그리피츠 애버딘자산운용 글로벌 대표는 "유로존 어떤 나라의 국채도 매입하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FT는 "오직 유럽중앙은행(ECB)만이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채권을 매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ECB의 국채 매입 규모도 10월 마지막주 95억유로에서 이달 첫째주 44억유로로 줄었다. 17일 프랑스가 국채 입찰을 실시하는데 전문가들은 높은 금리에 채권을 발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 희생양은 벨기에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15일 연 7.04%를 기록,'디폴트(채무불이행) 저항선'이라 불리는 7%대에 다시 진입했다. 이탈리아 CDS 프리미엄은 6.01%포인트까지 올랐다. 스페인 국채 금리는 연 6.36%로 분트와의 금리 차가 4.5%포인트 이상 벌어졌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은 지난해 국채 금리와 분트 금리 간 차가 4.5%포인트 벌어진 뒤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이탈리아는 마리오 몬티 신임 총리의 낮은 의회 장악력이,스페인은 20일 실시되는 조기 총선을 앞둔 정치적 불안감이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FT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다음으로 벨기에가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목했다. 벨기에 국채는 분트와의 금리 차가 3.14%포인트 이상 벌어졌는데 이는 유로존 가입 이후 최대다. 벨기에는 국가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로 그리스 이탈리아 등과 더불어 높은 편에 속한다. 지역감정 때문에 정당들이 연정을 구성하지 못해 20개월간 무정부 상태에 빠져 있는 것도 위험 요소로 꼽힌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