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1일) 오후에 이명박 대통령께서 국회를 방문한다.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면 낮은 자세로 가시겠다고 했다. "

11일 오전 8시20분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을 예고없이 방문한 김효재 정무수석은 이 대통령의 전격적인 국회 방문 일정을 발표했다. 한 · 미 FTA의 조속한 비준을 위해 대통령이 직접 국회를 방문해 야당을 설득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제1 야당인 민주당은 이를 즉각 거부했다. 민주당은 손학규 대표 주재로 열린 주요 당직자회의 직후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은 '밀어붙이기의 명분쌓기'이기 때문에 면담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회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한 · 미 FTA 비준안 처리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얘기 좀 하러 가겠다는 대통령을 야당이 단칼에 거부한 것이다. "입만 열면 이명박 정부의 '소통 부재'를 비판하던 민주당이 스스로 귀를 막고 소통을 거부한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 일정 연기에 한때 합의했다가 말을 바꾸기도 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이날 낮 박희태 국회의장에게 "15일 이 대통령을 맞이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국회 방문을 연기하기로 한 것은 민주당의 이 같은 긍정적 답변 때문이었다. 청와대 김 수석은 기자들에게 "여야가 조율해 15일 오면 모두 만나겠다고 약속해 이 대통령의 국회 방문을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오후 들어 15일 면담 일정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용섭 대변인은 "그날 가서도 상황이 똑같고 새로운 제안 없이 단순히 밀어붙이고 압력을 주기 위해서 오는 면담이라면 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분야 재협상 약속을 받아오지 않는 한 만나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이 대통령의 청와대 초청과 국회 연설을 거부하고,이젠 국회에 오지도 말라고 하는 것은 책임있는 야당의 자세가 아니다"고 말했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1월8일 한 · 칠레 FTA 비준 동의안 처리에 대한 협조를 구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당시 박관용 국회의장과 최병렬 한나라당,조순형 민주당 대표,김원기 열린우리당 공동 의장을 만난 바 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