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암부' 쓴 남명 조식, 철저한 민본사상 강조
부패관리 추방 주장…임진왜란 때 義兵의 산실
16세기를 살다간 처사 남명 조식(曺植 · 1501~1572)은 백성들의 삶에 대해 누구보다 고민했다. 그의 문집인 《남명집(南冥集)》에는 백성의 어려운 현실에 대해 근심하는 모습이 많다. 제자인 정인홍은 스승의 행장에서 이렇게 썼다.
"백성들의 괴로움을 염려하여 마치 자기 몸이 아픈 듯이 하였고 회포가 이어져 이를 말함에 이르러서는 혹 목이 메어 눈물을 흘렸다. 관리들과 더불어 이야기할 때는 일분이라도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힘을 다해서 말했으니 혹 베풀어지기를 바라서였다. "
《연려실기술》에도 "일찍이 선비들과 말을 하다가 당시 정치의 득실과 민생의 곤궁한 데 말이 미치면 팔을 걷어붙이고 목이 메어 눈물까지 흘렸다"고 하여 백성들의 고통에 대해 울분을 터뜨리는 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무엇보다 그의 적극적인 대민 인식이 구체화돼 있는 글이 《남명집》 권1에 실려있는 '민암부(民巖賦)'다. 그는 이 글에서 민의 존재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백성이 물과 같다 함은 예로부터 있는 말이다. 백성이 임금을 추대하지만 나라를 뒤엎기도 한다. 내 진실로 알거니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물이니,험함이 밖에 드러난 것은 만만히 대하기 어렵지만,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마음이니,험함이 안에 있는 것은 쉽게 대한다. 걷기에 평지보다 편안한 곳이 없지만 맨발로 다니면서 살피지 않으면 발을 다치고,거처하기에 이부자리보다 편안한 것이 없지만 모서리를 조심하지 않으면 눈을 다친다. 화는 실로 소홀함에서 연유하는 것이니 바위는 계곡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원독(怨毒)이 마음속에 있으면 한 사람의 생각이라 몹시 미세하고,필부(匹夫)가 하늘에 호소해도 한 사람일 적에는 매우 보잘 것이 없다. 그러나 저 밝은 감응은 다른 것에 있지 않고 하늘이 보고 듣는 것은 이 백성이라.백성이 원하는 바를 반드시 따르니 진실로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것과 같다. "
그는 백성들의 힘을 중시한 각종 경전을 광범하게 인용하며 백성이 우선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강조하고 있다. 이어 배를 뒤엎을 수 있는 민의 암(巖)이 생기는 원인을 당시의 현실 속에서 찾고 있다.
"궁실(宮室)의 넓고 큼은 바위의 시작이요,여알(女謁)이 성행함은 바위의 계단이요,세금을 기준 없이 거두어들임은 바위의 쌓음이요,도에 넘치는 사치는 바위의 세움이요,부극이 자리를 차지함은 바위의 길이요,형벌의 자행은 바위를 굳게 함이다. 비록 그 바위가 백성에게 있지만 어찌 임금의 덕에서 말미암지 않겠는가? 물은 하해(河海)보다 더 큰 것이 없지만 큰 바람이 아니면 고요하고,바위의 험함이 민심보다 더 위태로운 것이 없지만 포악한 임금이 아니면 다 같은 동포이다. 동포를 원수로 생각하니 누가 그렇게 하도록 하였는가? 남산이 저렇듯 우뚝하지만 오직 돌이 바위가 된 것이고,태산이 저렇듯 험준하지만 노(魯)나라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바이다. 그 바위는 마찬가지로되 안위(安危)는 다름이 있다. 나로 말미암아 편안하기도 하고,나로 말미암아 위태롭기도 하니,백성을 바위라 말하지 말라.백성은 바위가 아니니라."
위에서 보듯이 그는 궁실의 광대,여알의 성행,세금의 과중,사치의 지나침,가렴주구의 성행,형벌의 자행 등 6가지를 중요한 현실정치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바위가 험해지는 요인이 백성에 있고 민심은 임금의 덕에서 연유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는 '여알'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당시 문정왕후의 비호 아래 파생되는 척신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이것이 관리의 부패와 세금의 과중으로 나타나 궁극에는 민에게 미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정치의 잘못은 '민암'을 더욱 공고히 하여 결국에는 복국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경고했다. 마지막에서 '백성을 바위라 말하지 말라. 백성은 바위가 아니니라(莫曰民巖 民不巖矣)'고 표현하며 덕치가 행해지는 국가와 사회를 거듭 희구하고 있다.
'민암부'는 현실정치의 모순을 지적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민에게서 찾은 글로 백성을 기반으로 해 척신세력이나 부패한 관리를 추방하고 공도론(公道論)을 무기로 등장하는 16세기 사림파 세력의 입지를 넓혔다고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식의 문하에서 최대의 의병이 배출된 것을 보면 그의 민본사상은 실천성까지 수반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국회의원들에게 조식의 '민암부'를 정독할 것을 권하고 싶다. 백성들을 두려워해야 하는 위정자의 마음가짐이 더욱 절실한 시대다.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www.itkc.or.kr)의 '고전포럼-고전의 향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병주 < 건국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