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소설 거장' 구보가 詩를 썼다고?
"구보 박태원은 소설가 이전에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시론과 시세계를 이해한다면 문학세계 전체를 넓게 조망할 수 있을 겁니다.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의 작가 박태원(1909~1986).한국 모더니즘 소설의 거장인 그가 시를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시인 곽효환 씨(사진)가 펴낸 《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푸른사상)은 그래서 의미 있다. 월간 '문학사상' 10월호에 구보의 시를 처음으로 공개한 곽씨가 관련 연구성과를 책으로 엮었다.

"구보의 문학적 출발점이 시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한동안 말을 이을 수 없었습니다. " 곽씨는 2009년 이른 봄 구보의 시 자료뭉치를 접했을 때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한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준비차 박태원의 장남 일영씨를 만나면서 구보의 새로운 면모를 접하고,그때부터 구보의 시세계를 조명하는 작업에 빠져들었다.

'홰를치며쟈진닭이/세번을재가신누님/초생달이재넘을제/꼭오마고하시드니/보름지나금음돼도/가신누님안오시네.'('누님' 중)

박태원은 1925년 9월 조선일보에 '할미꽃'을 발표하면서 시를 처음 선보였다. 이듬해 3월 '조선문단'에 '누님'이 당선되면서 17세에 등단했고 1935년 2월 '병원'에 이르기까지 10여년 동안 19편의 시를 발표했다. 곽씨는 "구보는 10대 후반에 이미 100여편 이상의 시를 왕성하게 창작한 문학청년이었고,춘원 이광수 덕분에 여러 지면에 시를 발표했지만 아쉽게도 지금 전하는 것은 지면에 발표된 19편이 전부"라고 말했다. 이 책은 구보의 시 19편과 시론을 담은 산문을 함께 싣고 있다. 곽씨가 구보의 시를 분석한 논문도 수록했다. 곽씨는 논문에서 "구보는 소설에서 신선하고 예민한 언어감각과 함께 내용보다는 문장,형식,기교를 중시하고 영상 기법 채택,도시감각과 심리주의 기법 도입 등으로 밀고나간 것과 달리 시에서는 진(眞),미(美),열(熱)로 요약되는 현실에 대한 진정성을 기준으로 삼는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