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六感 마사지'…이게 미디어아트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 백남준(1932~2006)은 1960년 중반부터 국제 무대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1970년대 국내에 처음으로 비디오 아트를 소개한 작가는 박현기(1942~2000)다. 박씨는 1977년 대구현대미술제에서 오브제와 비디오 영상을 결합한 작업과 실험적인 퍼포먼스로 화제를 모았다. 돌과 TV를 결합시킨 '비디오 돌탑',모니터를 어항처럼 보이게 한 'TV어항'이 주목을 받으면서 1979년 상파울루비엔날레와 1980년 파리비엔날레에도 참가했다.

그를 비롯해 이이남 김해민 육태진 이용백 박화영 김승영 김세진 한계륜 김창겸 구자영 유지숙 류비호 전준호 김태은 장지아 노재운 양아치 씨 등 19명의 작품을 통해 한국 비디오 아트의 흐름을 탐색할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된다. 11일부터 내달 30일까지 서울 서린동 SK본사 아트센터 나비에서 펼쳐지는 '육감 마사지'전이다. 제목은 미디어 비평가 매클루언의 저서 《미디어는 마사지다》에서 따왔다. 첨단 영상과 정보기술(IT)을 현대미술 영역으로 끌어들인 시각 예술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는 퍼포먼스 영상을 비롯해 비디오 설치,영상 조각,디지털 인터랙티브 등 1970년대 이후의 작품 120여점이 나온다.

박현기의 1999년작 비디오 연못 '현현'은 선돌과 대리석에 영상을 투사해 진짜 연못의 일부처럼 교묘하게 짜 맞춘 작품.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의 신명이 만나는 접점으로 재즈의 엇박자 같은 느낌을 준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참여한 이용백 씨는 화려한 인조 꽃들로 채워진 공간에서 꽃으로 위장한 군인들이 살금살금 전진하는 장면을 촬영한 23분14초짜리 영상 작품 '엔젤 솔저'를 내놓았다. 과거의 전쟁을 통해 평화를 말하고 있지만 묘사 방법이 기발하고 재미있다.

영상 아티스트 김창겸 씨는 3D와 2D 이미지를 결합한 작업 '스틸 라이프'와 '창문 넘어' '다방을 찾아서' 등 근작 9점을 들고 나온다. '스틸 라이프'는 2D로 촬영한 인물을 3D 가상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판타지 효과를 창출해낸다.

지난해 에르메스미술상을 받은 양아치 씨(본명 조성진)의 디지털 인터랙티브 작업도 흥미롭다. 2010년작 '밝은 비둘기 현숙씨'는 주인공 현숙씨가 부암동 집에서 도산공원 근처를 오가며 관찰한 일을 감시 카메라와 비둘기의 시선으로 촬영한 20분짜리 영상 작품이다.

명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이남 씨는 2007년작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출품했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명작에 등장하는 소녀가 눈을 깜빡인 뒤, 눈물 한방울이 흘러 어깨의 옷을 적시는 작품'으로 보여준다.

TV 모니터를 조각처럼 설치한 김해민 씨의 'TV해체',왕따 현상을 영상으로 묘사한 장지아 씨의 '작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작품이 없는 화랑 공간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구자영 씨의 '갤러리에서' 등도 신선하다. 노소영 관장은 "새로운 개념의 가상 현실을 통해 현대미술이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점차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02)2121­-094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