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이 스토리텔링…드라마 발레 매력이죠"
"'효(강효정)'의 유일한 단점은 긴장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발레리나가 결정적인 장면에서 긴장을 하고 있어야 발레리노가 호흡을 가다듬고 리드하는 묘미도 있는데,효는 여유와 자신감이 넘치죠."(에반 맥키) "긴장을 많이 하는데 옆에서 모를 뿐이죠.무대에 오를 때마다 짧게 기도해요. 계속 귀여운 여동생 같은 역할만 하다 비련의 여주인공을 한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전막 발레로 한국 관객을 만나는 것도 처음이라 떨리고요. "(강효정)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 강효정과 에반 맥키가 한국을 찾았다. 오는 12일부터 8일간 유니버설발레단이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리는 드라마 발레 '오네긴' 공연을 위해서다. 둘은 13일과 15일 공연에서 호흡을 맞춘다.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강씨는 얼굴 가득 애교 넘치는 웃음을 띠고 있다가도 연습에 들어가면 금세 슬픈 감정을 끌어올렸다. 맥키도 190㎝가 넘는 키와 카리스마 있는 외모로 콧대 높은 귀족 오네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연기했다.

이들의 인연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씨는 여덟 살에 발레를 시작해 열세 살 때 미국 워싱턴 키로프발레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났다. 캐나다 토론토가 고향인 맥키도 이 학교 학생이었다. 맥키는 "처음 봤을 때 아주 작고 어린 꼬마였는데,2003년 효가 슈투트가르트발레단 단원으로 입단해 다시 만났을 땐 아름다운 숙녀가 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강씨는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입단 후 수년간 군무를 주로 하는 '코르 드 발레'에 속해 있었다. 2008년 우연 같은 필연이 찾아왔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주역이 사고로 갑자기 무대에 설 수 없게 된 것.대역이었던 그가 '깜짝 발탁'됐다. 이때 상대역이 맥키였다.

"미국에서 학교 다닐 때부터 제 별명이 '게으른 소녀'였어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욕심도 별로 없고 악바리도 아니었죠.그런데 발레단 입단 후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독해지는 법을 배웠어요.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된다는 것과 좀 더 강해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그는 '깜짝 캐스팅' 이후 기량을 인정받아 '오네긴'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비중 있는 배역을 소화하며 지난해 솔리스트로 승급했다. 그로부터 1년도 지나지 않은 지난 4월,입단 7년 만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으로 첫 주역을 맡았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수석무용수로 다시 한 번 승급했다. 솔리스트에서 수석무용수가 되기까지 통상 3~5년 걸리는 것에 비해 파격적인 인사였다.

둘은 '오네긴'을 어떻게 해석할까. 맥키는 "안무가 존 크랑코의 발레는 모든 순간,모든 몸짓이 다 이야기를 전하는데,현실에 있을 것 같은 이야기와 인물을 다루기 때문에 춤을 추면서 순수한 감정이 끓어오른다"며 "특히 오네긴과 타티아나의 관계가 반전되는 비극은 인생의 한 단면"이라고 설명했다.

강씨는 "강수진 선배가 타티아나를 연기할 때 옆에서 추는 군무를 눈물 흘리며 몰래 바라본 기억이 난다"며 "무겁고 어려운 역할이지만 억지로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감정이 몰입되는 힘이 있어 마치 연극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