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일렉트로닉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인수 금액 할인을 이유로 계약을 무산시킨 이란계 엔텍합이 이행보증금을 돌려받게 됐다. 그동안 법원은 기업 인수 · 합병(M&A)을 무산시킨 경우 이행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해 왔다. 이에 따라 한화그룹과 현대그룹 등 M&A 과정에서 이행보증금을 냈다가 떼일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어떤 판결을 받을지 주목된다.

7일 대우일렉 채권단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대우일렉 소송'과 관련해 최근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직권조정결정)'을 내렸다. 한국자산관리공사,우리은행 등 38개 채권단은 이행보증금 578억원을 모두 돌려주되,엔텍합은 대우일렉에 지고 있는 외상대금 2800만달러(약 310억원)를 갚으라는 내용이다.

일종의 중재안이기 때문에 채권단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9일까지 이의가 접수되면 재판부는 전액 몰취나 전액 반환 중 하나로 최종 판결을 내리게 된다. 이와 관련,최대주주인 자산관리공사는 전액 몰취해야 한다는 입장인 데 비해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법원의 결정을 수용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중재안을 낸 가장 큰 이유는 매각 대상 기업인 대우일렉이 자금 사정 악화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대우일렉 채권단 관계자는 "하루빨리 새 주인을 찾아야 회사를 정상화할 수 있는데 엔텍합이 이행보증금 반환과 함께 매수인 지위를 유지해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내놨다"며 "이행보증금을 몰취할 경우 매각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행보증금을 못 받으면 엔텍합이 2800만달러의 외상금을 안 갚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중재를 낸 이유다.

조건이 달려 있긴 하지만 이행보증금을 돌려주라는 법원의 결정이 나오면서 한화,현대그룹,동국제강 등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는 기업들도 '대우일렉 소송'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우조선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인수가 무산된 한화그룹은 3150억원의 이행보증금 반환을 놓고 산업은행과 항소심을 진행중이다.

현대건설의 우선협상대상자였다가 자격이 박탈된 현대그룹은 2755억원의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을 낼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쌍용건설을 인수하려다 포기한 동국제강도 자산관리공사에 232억원을 돌려달라며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우발채무 발생 가능성까지 포함해 인수를 시도하는 기업이 입찰계약서상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재판부의 판결이었다"며 "대우일렉 소송이 다른 소송들에 미칠 영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