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피플' 모여들던 화려한 시절은 가고…스타일 구긴 '맨해튼 7번가'
명품 매장이 즐비한 맨해튼 5번 애비뉴를 흔히 뉴욕의 패션거리라 부른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패션애비뉴(Fashion Avenue)라는 이름이 붙은 거리는 7번 애비뉴다. 남북으로는 35번가에서 41번가에 걸쳐 있는 이 지역은 의류업체 밀집지역이라는 뜻에서 '가먼트 디스트릭트(Garment District)'라고도 불린다. 3일(현지시간) 37번가의 봉제업체 '뉴월드패션'에는 10여명의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디자이너들이 주문한 겨울용 코트를 봉제하고 있었다. 중국인 사장 셴징은 "몇 년 전부터 주문량이 1년에 10%씩 줄어들면서 20명이 넘던 직원 수를 최근 반으로 줄였다"며 "렌트비가 치솟아 작업공간의 15%는 요가학원에 재임대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이탈리아 밀라노와 함께 뉴욕을 세계 3대 패션 도시로 성장시키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패션애비뉴가 고사 위기에 처했다. 중국 인도 남미 등 인건비가 싼 해외에 일감을 빼앗긴 데다 임대료마저 치솟으면서 영세 제조업체들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제조업의 쇠퇴가 창조산업에까지 위기를 불러온 셈이다.

◆제조업 속에 피어난 패션산업

'패션 피플' 모여들던 화려한 시절은 가고…스타일 구긴 '맨해튼 7번가'
뉴욕이 미국 의류산업의 중심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기성복의 대량생산이 본격화되기도 전인 18세기부터다. 남부의 농장주들은 노예들이 입을 옷을 뉴욕 의류 회사에 주문했다. 노예들에게 직접 옷을 만들게 하는 것보다 대량으로 구매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1850년 봉제기계가 발명되면서 본격적으로 산업화되기 시작한 뉴욕 의류산업은 남북전쟁으로 군복 수요가 급증하면서 꽃을 피웠다. 19세기 중반 독일과 중부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은 고향에서의 사업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뉴욕 의류산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20세기 초에는 동유럽 이민자들이 몰려들면서 풍부한 노동력을 공급했다.

이렇게 기술과 노동력,유통망을 확보한 뉴욕 의류산업은 20세기 초 뉴욕시의 최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의류제조업 매출은 2위인 설탕정제업의 3배에 달했다. 미국 여성의류의 70%,남성의류의 40%가 뉴욕에서 만들어졌을 정도다. 뉴욕 경제에서 가장 중요했던 의류업은 당연히 도시 중심에 자리잡았다. 패션애비뉴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이 거리를 중심으로 파슨스 등 디자인학교들이 속속 들어섰고 디자이너들이 몰려들었다.

◆매출 감소,임대료 상승으로 퇴출

'패션 피플' 모여들던 화려한 시절은 가고…스타일 구긴 '맨해튼 7번가'
하지만 300년을 이어온 뉴욕 의류제조업도 거대한 산업구조의 변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값싼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 인도 남미 등 신흥국들로 제조업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2000년 1만5000명에 달했던 패션애비뉴의 제조업 종사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절반도 안 되는 7100여명으로 줄었다.

이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회계사,변호사,홍보대행사,정보기술(IT)업체 등이 채워나갔다. 건물주들은 더 많은 임대료를 안정적으로 지급하는 고소득 입주업체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부동산업체인 뉴마크나이트프랭크의 에릭 구랠 대표는 "타임스스퀘어,매디슨스퀘어가든 등 여행객들이 몰려드는 곳과 가까워 최근 5년 동안 패션애비뉴 지역에 20개의 호텔이 새로 생겼다"며 "임대료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직물유통업체 로젠&채딕의 엘렌 로젠 사장은 "임대료가 치솟으면서 매장 면적을 절반 이하로 줄였다"며 "그나마 우리는 운이 좋아 아직 버티고 있지만 대부분은 이미 떠났다"고 말했다.

◆중국 업체와 협상해야 하는 디자이너

더 큰 문제는 의류제조업의 쇠퇴가 창조산업인 패션디자인 산업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더 이상 가까운 곳에서 원 · 부자재를 구하거나 디자인한 옷을 가공할 수 없게 된 디자이너들도 하나 둘 패션애비뉴를 떠나고 있다. 최근 들어서만 에린 파더스톤,앨리스+올리비아 등 유명 디자인 브랜드들이 다른 지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버라 랜달 패션애비뉴 사업개선연합회 이사는 "패션애비뉴에 생산시설이 없으면 디자이너들도 이곳에 모여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신인 디자이너 레이첼 둘리는 "과거에는 패션애비뉴에서 옷감을 구하고 샘플을 만들고 원하면 대량생산까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창조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디자이너들이 직접 중국의 아웃소싱 업체와 전화로 가격 흥정까지 해야 한다"며 "창조활동에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패션 피플' 모여들던 화려한 시절은 가고…스타일 구긴 '맨해튼 7번가'
뉴욕의 유명 디자이너 나넷 레포르는 "패션애비뉴의 염색 및 봉제공장들과 도 · 소매업자들은 내가 작은 규모로 시작한 사업을 직원 150명의 기업으로 키워낼 수 있었던 토대"라며 "디자이너들이 아이디어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패션애비뉴는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