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갑작스런 '1조621억 유상증자' 왜?
LG전자가 1조621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키로 한 것은 스마트폰 등 시설 투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정보기술(IT)산업의 속성상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만 IT 계열사의 동반 적자로 내부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신용등급 강등으로 회사채 발행마저 힘들어져 유상증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LG전자가 주주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 뒤 일부 자금은 LG디스플레이 등에 지원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채 발행 힘들어

LG그룹 IT 계열사들은 3분기 동반 적자를 냈다.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의 3분기 영업손실 규모는 5291억원에 달한다. 영업활동으로는 신규 투자 자금을 마련하지 못할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스마트폰 경쟁력이 떨어지는 LG전자로서는 시설 투자를 위해 외부 자금 수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이 좋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LG전자는 올 들어 이미 1조1358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하지만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의 최하위인 BBB-로 강등시킨 상황이라 회사채 발행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LG전자가 증자하는 것은 1998년 보통주 유상증자와 2000년 상환우선주 발행 이후 처음이다.

LG전자는 증자금액 중 6385억5300만원은 시설자금으로,4235억4700만원은 운영자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운영자금은 연구 · 개발(R&D) 투자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서 제기한 하이닉스 인수전 참여 가능성에 대해선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증자 후 계열사 지원할 듯

LG전자는 주주 배정 방식 유상증자를 실시키로 했다. 실권주가 발생하면 일반공모를 통해 소화하기로 했다. 발행 주식 수는 1900만주다. 발행 예정가는 5만5900원으로 3일 종가(6만1600원)보다 5700원(9.2%) 낮다. 신주 발행가는 오는 12월15일 확정된다. 구주주 청약은 12월21일부터 28일까지 이뤄진다. 신주는 내년 1월9일 상장될 예정이다.

LG전자의 대주주는 34.8%의 지분을 가진 그룹 지주회사인 ㈜LG다. LG는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실권주 일반공모에도 참여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렇게 되면 ㈜LG는 LG전자에 대한 지분율을 늘리게 된다. 만일 실권주 일반공모가 미달하면 주관사인 우리투자증권이 나머지 물량을 떠안게 된다.

LG전자는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뒤 시설자금 외에 일부를 계열사 지원에 사용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이 LG전자를 포함한 주주를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LG전자는 LG디스플레이 지분 37.9%,LG이노텍 지분 47.89%를 보유하고 있다.

◆주가 당분간 약세 면치 못할 듯

유상증자 실시로 당분간 LG전자 주가는 약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박성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유상증자에 따른 주식 가치 희석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증자 여부와 규모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됐고 자금 사용 목적도 R&D로 명시했기 때문에 하이닉스 인수전 참여 등 시장이 가장 우려했던 시나리오에서는 벗어난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날 LG전자는 13.73% 하락했다. ㈜LG도 9.89% 급락했다. LG디스플레이(-6.32%) LG이노텍(-4.46%) 등 주요 계열사도 큰 낙폭을 보였다. LG그룹 상장 11개사의 시가총액은 71조3377억원에서 66조8755억원으로 이날 하루 4조4622억원이 날아갔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