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게임은 단순하게"…기업가치 1조원 비결은 ‘역발상 전략’
2009년 봄 핀란드 헬싱키의 한 사무실. 12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심각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오랜 시간 격론이 오갔다. 그리고 내려진 결론은 “사람들이 이 게임을 평균 1분만 즐긴다고 생각하라. 게임을 잘 하지 않는 여성과 노인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리학 법칙을 게임에 적용하라”였다. 이들은 당시 파산위기에 처한 게임업체 로비오의 직원들. 12명이 당시 파산직전에 몰린 이 회사의 직원 전부다.

대형 게임회사의 하청작업을 하던 로비오는 2008년 금융위기의 한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경기침체로 주문은 뚝 끊기고 50여개의 독자개발한 스마트폰용 게임은 실패로 돌아갔다. 어쩌면 마지막 회의가 됐을지도 모르는 그날의 아이디어가 회사의 운명을 바꿨다. 이날 정해진 원칙에 따라 탄생한 게임이 ‘앵그리 버드’다. 이 게임은 2009년 12월 출시돼 지금까지 다운로드 4억회,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56개국에서 애플리케이션 누적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앵그리버드는 도산직전의 로비오를 회생시켰을 뿐 아니라 기업가치를 12억달러(블룸버그통신)로 끌어올렸다.

◆단순함이란 역발상으로 성공

"휴대폰 게임은 단순하게"…기업가치 1조원 비결은 ‘역발상 전략’
로비오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미카엘 헤드는 미국 정보기술(IT) 잡지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앵그리버드가 성공한 비결로 단순함을 꼽았다.

스마트폰의 성능이 발전하면서 오락실의 고용량 게임까지 애플리케이션으로 출시되는 상황에서 ‘역발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이다.

헤드 CEO는 게임 개발 당시 직원들에게 “휴대폰 게임은 시간 떼우기용으로 간단히 즐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복잡해선 안된다”며 “로딩 시간도 최소로 줄여라”고 지시했다.

스트리트파이터 등 고용량 게임을 아이폰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게 화제가 되던 시기에 역주행의 코스를 택한 것. 쉽고 단순하게 라는 로비오의 전략은 적중했다. 세대와 관계없이 누구든 어느 장소에서나 빠른 시간 안에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 성공 포인트다.

앵그리버드에 앞서 로비오는 다양한 스마트폰용 게임을 개발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헤드CEO는 직원들로부터 매일 올라오는 2~5개의 게임 컨셉트를 번번이 거절했다. 뭔가 복잡하기만 하기 때문이었다. 50여개의 게임이 실패로 돌아갈 때쯤 그는 심심풀이로 하던 플래시 기반 게임을 떠올렸다. 플래시 게임이란 컴퓨터 웹 상에서 간단하게 즐길 수 있게 만든 저용량 게임이다. 벽돌깨기, 미니골프 등 단순한 게임이 대부분이다. 그는 “게임을 개발할 때 평소에 게임을 하지 않던 사람도 흥미를 느끼고 쉽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며 “이를 위해 평소 게임을 안하던 어머니에게 개발 중이던 게임을 해보도록 권유했다”고 말했다. 헤드 CEO는 어머니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고쳐 게임을 더욱 쉽고 재미있게 만들었다. 가격은 0.99달러로 저렴하게 책정했다. 박리다매 전략이었다.

단순함으로 승부한 헤드 CEO의 승부수는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사람들은 작은 화면의 스마트폰으로 복잡하고 머리 아픈 게임을 하기보다는 간단한 게임을 하길 원했다. 로비오는 지금까지 앵그리버드 제작 및 홍보에 10만유로를 투입했지만 벌어들인 돈은 5000만유로가 넘는다. 게임 하나가 투자 대비 500배의 수익을 가져다준 것이다. 헤드CEO는 지난 6월 미국 경영잡지 크리에이티비티가 선정한 ‘창조적인 50인’에 선정됐다.

캐릭터 산업으로 진화

헤드 CEO는 “게임을 앱스토어에 올려놨을 때 사람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아이콘으로 쓸 수 있는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앵그리버드 캐릭터가 날개 없이 몸통과 얼굴이 한 덩어리로 이뤄진 귀엽고 단순한 모양이 된 이유다.

게임이 널리 보급되며 앵그리버드 캐릭터가 인기를 끌자 로비오는 캐릭터 상품 산업에 뛰어들었다. 로비오는 지난 3월 앵그리버드 캐릭터 장난감을 출시해 9월까지 600만개 정도를 팔았다.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앵그리버드 장난감과 티셔츠가 한 달에 각각 100만개가 팔릴 정도로 큰 인기라고 보도했다. 캐릭터 판매는 로비오 매출의 20%를 담당하고 있다. 처음에는 인터넷으로 주로 판매하다 지금은 완구 업체 및 의류 업체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매장에서도 팔고 있다. 앵그리버드 매장은 핀란드에서 시작해 유럽 각지와 미국으로 퍼져 나갔고 최근 한국에도 들어왔다.

중국 창사(長沙)에는 로비오의 허락 없이 앵그리버드 테마파크가 최근 문을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로비오는 올 여름 폭스사와 함께 3D영화 ‘리오’도 만들었다. 앵그리버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영화로 북미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이 영화는 약 4억70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로비오는 앵그리버드를 디즈니의 미키마우스나 닌텐도의 슈퍼마리오처럼 세계적 캐릭터로 키울 계획이다. 로비오는 이를 위해 핀란드 애니메이션 회사 ‘콤보’를 지난 6월 인수했다. 로비오는 ‘거물’들을 잇따라 영입하며 더 높게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6월에는 마벨스튜디오의 회장이었던 데이비드 마이젤을 특별 고문으로 임명했고, 8월에는 폭스디지털엔터테인먼트의 부사장이었던 앤드류 스탤바우를 북미지역 대표로 내정했다. 투자자들도 줄을 서고 있다. 로비오는 지난 3월 스카이프 창립자 니클로스 젠스트롬 등에게서 4200만달러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블룸버그는 뉴스코프 월트디즈니 EA 징가 등이 로비오와 투자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비오의 기업가치는 12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르면 내년 기업공개(IPO)를 할 예정이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